사진 = 라이크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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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참, 저는 평소에 늘 클래식 음악만 듣고 사는 사람은 결코 아님을 밝혀둡니다. 요즘은 말러의 <교향곡 3번>의 6악장을 가장 많이 듣고 지내는데요. 그만큼 김동률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나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에서 토이 노래 모음이나 비긴 어게인 채널 등의 음악도 즐겨 듣는 사람이에요. 적다보니, 제 청음 취향은 주로 선율선이 아름다운 곡을 찾는 것만 같습니다.

또 영화라는 멋진 공간에서 클래식 음악이 등장할 때마다 느낀 점인데요. 감독이든 음악 감독이든 대본 작가이든 누군가의 어떤 설계에 의해 짜잔, 하고 음악이 흐르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가령 영화 제작진이 해당 음악에 얽힌 에피소드와 영화 장면을 연관 짓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강의 어떤 분위기를 맞추다가 우연이지만 필연처럼 그렇게 서양 음악사의 희로애락을 담아 온 선율을 찾아내는 거죠.

어떤 경우이든 관계없이, 클래식 음악이 들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좋아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꾸준히 발표되는 클래식 음악 영화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음악가,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요. 주인공이 연주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은 클래식부터 재즈 등 여러 장르를 포함하지요. 커다란 슬픔이라는 배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이 아련한 작품입니다. 피아니스트의 삶에서 펼쳐지는 눈물과 아픔, 그리고 고통과 비극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이야기가 음악과 함께 하는 그 여정을 정말 잘 담고 담은 영화에요.

이 영화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을까요. 저는 한 5번 이상은 본 것 같은데요. 뭐랄까요. 마음이 시리고, 저리고 그렇더라고요. 언제라도 또 보고 싶은 명작이자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행복한 영화는 아닌데요. 마치 우리들 삶처럼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작품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결코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요. 그 와중에서도 주인공 피아니스트처럼 음악이라는 작은 기쁨과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한 번 더 꺼내어보고 싶네요. 이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도 결국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거든요.

우리는 행복을 연주했어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아름다운 음악과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단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와 가진 것이라곤 낡은 트럼펫 한 대가 전부인 트럼페터가 쌓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98년 이탈리아의 영화 거장인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만든 명작으로, 2000년 골든글러브 음악상 수상작입니다. '데니스 부드먼 T.D 나인틴헌드레드' 역에 팀 로스, '맥스 투니' 역에 브루이트 테일러 빈스가 열연한 음악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묘한 슬픔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어있다는 점입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한 주인공 나인틴에 대한 아련함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영화 곳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불협 음정들이 흘러나오며, 아픈 분위기를 돕습니다.

1900년 1월 1일 화요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출발하던 '버지니아 호'의 대연회장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아기 바구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드림을 안고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가던 증기 여객선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기가 발견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당시 기준으로 유럽에서 미국까지 가는 데 배편으로 보통 30~40일 사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바구니에는 T.D.레몬 이라는 이탈리아 레몬 회사의 이름이 적혀있었고요. 아기를 발견한 화부 데니스 부드먼은 자신의 이름과 레몬 회사 이름, 그리고 아기가 발견된 날을 조합해 멋진 이름을 지어줍니다. 꽤 긴 편인데요. 기구한 사연을 가진 아기는 데니스 부드먼 T.D 나인틴헌드레드(이하 나인틴)이라는 이름을 갖고 배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이 영화는 나인틴이 배 안에서 천재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죽기까지의 모든 삶을 보여줍니다. 불의의 사고로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대연회장의 그랜드 피아노에서 고사리 손으로 혼자 피아노를 익혔고요. 운명 같은 그의 재능은 이 배에서만큼은 천재 피아니스트로 살게 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자 3등석의 사람들이 모두 갑판으로 뛰어나와 환호하던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기회가 없어 기회를 잡지 못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기회의 땅에 도착한 순간을요. 또한 약 20년 전 팀 로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빈털터리 트럼페터와 나인틴의 슬픈 우정

사진 =  라이크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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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틴의 유일한 친구였던 '미스터 콘' 맥스 투니 또한 평범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불안장애를 가진 두 남자의 우정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거든요. 맥스는 배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나인틴의 인생을 평범하게 만들어주려고 했습니다. 또 나인틴의 천재성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했고요. 우정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수 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인틴은 육지에 가지 않았습니다. 출생 등록이 안 된 사람, 신분증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를 영영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으니까요.

사진 =  라이크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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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사랑 '파두인'이 알려준 주소인 '모트 27번 가의 생선가게'로 가기 위해서였을까요. 1933년 8월 21일, 나인틴은 드디어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맥스가 선물해 준 낙타빛깔 코트를 입고 트랩의 계단을 내려갔고요. 그의 앞에는 뉴욕의 빌딩숲이 펼쳐졌지만, 결국 그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허드슨 강 어딘가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버지니아 호'로 돌아왔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6.5톤의 다이너마이트로 폭파 예정이던 '버지니아 호'에서 두 친구는 다시 만납니다. 죽더라도 배에서 내릴 수 없는 나인틴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맥스의 울음은 슬픔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세상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사람 나인틴. 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연주합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빛낸 음악 3곡

사진 =  라이크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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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장면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악들이 흐릅니다. 담뱃불로 시작해 담뱃불로 끝난 피아노 배틀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중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도 기억에 남고요. 그 중에서도 익숙한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아메데오 토마시 <매직 왈츠>

흔들리는 배 안에서 그랜드 피아노의 의자에 앉은 두 남자가 스케이트를 타는 듯한 이 장면. 정말 멋지지 않나요. 마치 마법처럼요. '매직 왈츠'입니다. 기분 좋은 느낌의 왈츠는 앞으로 둘의 우정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축하해주는 것 같아요. 2017년 BTS의 멤버 뷔가 자신의 인생 영화로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추천한 사실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는데요. 뷔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은 음악으로 '매직 왈츠'를 꼽았다고 합니다.

 

드뷔시 <바다>

성인이 된 나인틴은 3등실의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서 드뷔시의 <바다>를 연주합니다.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공연을 하지 않던 시간에는 3등실의 낡은 피아노에서 종종 시간을 보냅니다. 그의 눈은 작은 창 너머의 바다를 보고, 그의 손은 건반 위에서 바다를 연주합니다.

 

엔리오 모리꼬네 <플레잉 러브>

생애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나인틴이 즉석에서 연주했던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결국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 사랑이 담긴 음악은 LP에 남아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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