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삶에는 저마다의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며, 매일같이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삶이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 일흔 일곱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도 평생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마음의 병이 온 몸의 병으로 퍼졌던, 굉장히 아픈 시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전히 피아노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슬픔과 고통에 음악을 통해 맞섰고, 모든 악조건의 삶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할아버지입니다. 지난달에는 호주 투어 연주를 소화하며 노익장의 면모를 증명하기도 했고요.

종종 이렇게 멋진 분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면 종종 제 태도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신데,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느냐고요!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영화나 책 혹은 주변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요즘같은 무더위에는 우리집 극장 1열에서 보는 영화만한 것도 없죠. 오늘 칼럼에서는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영화 <샤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실화 바탕으로 한 클래식 음악 영화의 전설

영화 <샤인>은 클래식 음악 영화의 전설과 같은 작품입니다. 이미 수많은 클래식 음악 영화들이 있지만, 이 작품은 조금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올해 만 75세가 된 노익장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데요. 그의 모든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스크린에서 흐릅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습니다. 심금을 울릴 수밖에요.

가정 폭력과 비뚤어진 자녀애착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 공병 등의 폐기물을 온 가족이 수거하며 연명했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이작 스턴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려다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된 일.

아버지를 떠나 런던왕립학교에 다니던 중 콩쿠르에서 우승한 일, 패닉과 불안장애 등 신경 증상을 앓아 10년 간 피아노를 치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던 일, 가족에게 버림받아 집도 없이 떠돌던 일.

동네의 허름한 식당에서 우연히 연주를 시작해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 일, 운명의 여인 길리안을 만난 일, 그녀와 결혼 후 피아니스트로 재기한 일 등은 한 편의 감동드라마이기에 충분하니까요.

현재 그는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1996년 <샤인>의 개봉 이후 전 세계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생겨났기 때문인데요. 연주자에게 무대가 생긴다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공평하다는 말이 그에게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 그가 겪었던 고난이 무색하리만큼, 행복한 인생의 후반부를 달려가는 그의 행보에 많은 팬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희망을 위하여

이 영화는 데이비드 헬프갓이 가족 대신 음악을 선택한 이후의 일들을 덤덤하게 그려냈습니다. 굉장히 아플 수 있는 감정들을 음악으로 감싸는 듯해요. 특히 모든 것을 버리고 음악에 몰두했던 그가 콩쿠르 무대에서 쓰러진 사건 이후의 이야기들까지도요.

결국 모든 문제를 스스로 이겨내고,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길고 긴 여정을 클래식 음악과 함께 보여줍니다. 그 점이 참 매력적인 작품 같아요. 영화 속 대부분의 피아노 음악은 데이비드 헬프갓이 직접 연주했는데요. 희망이라는 끈을 찾을 수 없었던 데이비드 헬프갓의 삶을 아름답게 또 실감나게 보여주기에 좋은 선택이었죠.

참, 이 영화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샤인>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굉장한데요.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 두 분의 음악 선생까지 모두 라흐마니노프를 음악적 산과 같이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거든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무시무시하면서도 숨 막힐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데요. 또 누구나 연주할 수 없어서 더 매력적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데이비드 헬프갓이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장면이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장면 같아요. 그 무대를 기점으로 그의 신경 증상이 발현했다는 것도 한 몫 하고요. 모든 것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했지만,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던 그의 삶에 다시 피아노와 사랑이 깃든 모습이 깊은 여운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샤인>을 빛낸 음악 3곡

150분의 러닝타임 중 클래식 음악은 대략 11곡정도 등장합니다. 물론 데이비드 헬프갓이 직접 연주한 작품도 포함해서요. 가족을 떠나 음악을 선택했던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했습니다.

쇼팽 <폴로네즈, op.53>

아버지 피터 헬프갓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어린 시절의 데이비드 헬프갓.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 지역의 작은 콩쿠르에 참가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음악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업라이트 피아노의 바퀴가 고정되지 않아서 데이비드 헬프갓이 연주할 때 마다 피아노가 밀려 결국 벽까지 굴러가는데도 끝까지 연주한 점입니다.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리스트 편곡판

데이비드 헬프갓의 런던 유학 시절과 결혼 후 재기 연주회 총 2번 흐르는 작품입니다. 새로운 시작의 순간에 연주했던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데요. 가족과 집을 떠나 음악을 선택했던 첫 장면에서 이 음악을 연주합니다. 극적인 시간들을 이겨낸 그가 결혼 후 재기하는 첫 번째 연주회에서 당당하고 힘찬 이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데이비드 헬프갓이 어린 시절부터 연주해보고 싶었던 인생 작품입니다. 실제로 영화에 흐르는 음악도 그가 직접 연주한 음원이고요. 그는 영국 유학 중 왕립음악학교의 세실 교수에게 이 작품을 배우고, 콩쿠르 결선 무대라는 최고의 순간 이 작품을 연주합니다. 절연한 그의 아버지도 먼 거리에서 실황으로 아들의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등 의미 있는 음악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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