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등재되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이 교향곡이 위대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토록 훌륭한 음악 작품으로 남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사실 무척 힘겹게 탄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시기 베토벤이 어렵게 쓴 작품이니까요.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소리를 상상하고 그것들을 악보에 담았지요.

무엇보다 <교향곡 9번>이 서양 음악사에서 특별한 점은 교향곡에 합창을 구성한 점입니다. 이 작품 이전에는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부분을 넣은 적이 없거든요. 우리 귀에 익숙한 합창 '환희의 송가'는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폰 실러가 쓴 동명의 시에 베토벤이 선율을 붙인 합창인데요. 당시에는 파격적인 교향곡 구성이라는 비평과 함께 관심을 끌었고,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는 합창의 가사가 들려주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카핑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상상과 사실을 적당히 섞어 담은 영화입니다. 실존했던 베토벤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고, 베토벤의 생애를 다루는 동시에 베토벤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 교향곡을 작곡하고 무사히 발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극화했거든요. 특별하게 재미있는 장면도 없고, 유독 베토벤을 괴팍한 성격의 늙은이로 그린 장면들도 많지만 베토벤의 말년과 <교향곡 9번>에 대한 픽션이 따듯하게 녹아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악보 그리는 여인

"음악은 신의 언어야. 우리 음악가들은 최대한 가까이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신의 입술을 읽지. 그게 음악가라는 존재야. 그게 아니라면 우린 아무 것도 아닌거지."

<카핑 베토벤> 중 베토벤과 안나 홀츠의 대화 중

<카핑 베토벤>은 1824년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요. 17세에 고향인 독일 본을 떠나 빈으로 유학을 떠났던 베토벤은 죽을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요. 그만큼 빈이라는 도시는 베토벤에게 큰 영감과 살아가야 할 목적이 되어준 곳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 여성 작곡가의 꿈을 갖고 공부 중인 안나 홀츠가 등장합니다. <교향곡 9번>의 초연을 4일 남겨둔 시점에서요. 그는 베토벤의 악보를 다시 악보에 필사해, 새 악보로 제작하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던 카피스트일을 맡습니다. 4일 후 초연해야 하는 교향곡의 악보를 모두 완벽하게 옮겼고요. 이때부터 베토벤과 진실한 우정을 쌓습니다.

베토벤은 처음 만난 안나 홀츠에게 여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며 호통을 치는데요. 안나 홀츠는 당당하게 자신이 필사한 베토벤의 악보를 본 후 자신을 채용할지 말 지를 정하라고 맞받아치죠. 괴팍한 성미를 부리던 베토벤은 안나 홀츠의 악보를 보자마자 조용히 그를 즉시 채용하고요. 이렇게 영화가 시작됩니다. 참 실제 당시에는 복사기도 없었고, 인쇄술도 크게 발전하던 시기가 아니었는데요. 때문에 작곡가들이 악보에 쓴 작품을 다시 새로운 악보에 깔끔하게 옮겨 적는 카피스트들이 필요했어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 시대의 악보들 중에서 작곡가가 특별히 필사한 한정판 악보들도 있는데요. 가령 베토벤이 직접 필사해 판매했던 악보인 셈이죠. 하여튼 안나 홀츠는 이렇게 베토벤의 집에서 그의 악보를 그리며 <교향곡 9번> 초연까지 큰 도움을 줍니다.

또 이렇게 악보를 완성한 베토벤은 <교향곡 9번> 초연 무대에서 직접 지휘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당시의 명 지휘자였던 미하일 움라우프에 의해 초연되었거든요. 그러나 영화 속에서 베토벤은 안나 홀츠의 도움을 받아 초연 지휘에 성공하는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또 잘 알려진 그의 유명하고 밉살맞은 조카 칼도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베토벤에게서 돈을 타서 도박장에 들락거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영화에서 이런 칼의 모습을 부각해, 더 나쁜 조카로 그려낸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실제 베토벤의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섞여있는 영화 <카핑 베토벤>. 분명 베토벤이라는 한 사람을 더 가까이 만나본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카핑 베토벤> 빛낸 3곡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의 유작이자 클래식 음악사에 큰 획을 남긴 작품입니다. 교향악에 합창을 편성해, 전례없이 파격적인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

자동차 후진음 등 일상 생활에 자주 쓰이는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선율이 담긴 작품입니다. 엘리제라는 여인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악4중주> '대푸가'

'합창'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작곡한 작품입니다. 초연 당시 세간의 큰 비판을 받았지만, 러시아의 음악가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을 두고 완벽한 현대음악의 시작이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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