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유관기관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유관기관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강 작가의 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문체부 중심의 국가 주도 출판·도서 분야 지원 정책 방향성에 대한 비판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국 문학의 세계적 진출을 위해서는 국가 기관에서의 작품 사전 검토·심사를 거친 지원이 아닌 지역 서점 등 민간 출판·도서 지원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김준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은 지난 15일 진행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유관기관 국정감사 자리에서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추천 도서 목록 총 8549권 중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작품이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제외하고 한 권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 사과했다.

문체부는 독서 문화 보편화와 공공도서관·소외지역 초·중·고등학교의 장서 확충 등을 위해 진흥원의 소관 하에 세종도서 보급사업을 통해 교양·학술 분야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구입·보급을 지원하고 있다.

김 진흥원 원장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심사 과정 전체는 추천위원회의 의결 사항이고 심의 사항"이라며 "저희들은 어떠한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희망은 있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이 "진흥원의 2014년 추천도서 3차 심의 중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탈락시켰는데, 진흥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에 대해 검토했음'이라는 총평이 존재한다"며 지적하자 "(문화계) 블랙리스트 조사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지정 등을) 시정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도 "심사가 여러 차례에 걸치면 좋은 작품을 뽑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늘어지는 만큼 개입의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특정 정치 성향 등을 이유로 지원 중단·차별 등 불이익을 가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함께 현재 문체부의 출판·도서와 문학계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공개한 '2023년~2025년(정부안) 5개 도서·출판 지원사업 예산 현황' 자료 토대 분석 표. 사진 =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공개한 '2023년~2025년(정부안) 5개 도서·출판 지원사업 예산 현황' 자료 토대 분석 표. 사진 =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앞서 문체부는 민간 출판·도서 분야 예산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문체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기준 지난해 출판산업육성 산업 본예산은 2022년에 비해 2.2% 줄어든 232억1000만원으로 줄었다. 특히 지역 서점 등 중·소규모 작은 서점의 존립을 돕는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 사업'은 올해 폐지하기까지 했다. 반면 문체부 산하 기관인 진흥원의 예산은 2023년 출판 분야 사업 중 유일하게 예산이 확대 편성됐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국정감사를 위해 문체부와 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2025년(정부안) 5개 도서·출판 지원사업 예산 현황' 자료를 토대로 "2023년 792억원이었던 예산이 2025년 정부안에서 707억원으로 10.8% 삭감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5개 사업은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 △도서관 정책개발 및 서비스 환경개선 △출판산업육성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지원 △한국문학번역원 지원 등이며, 이 중 2025년 기준 예산이 확대된 것은 번역원과 진흥원 지원뿐이다. 특히 진흥원 지원의 경우, 지난해 232억1000만원이었던 예산이 2025년 예정안에서는 460억4700만원까지 크게 늘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7월 공고한 2024년 제2차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심사 기준. 사진 = 진흥원 공고 갈무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7월 공고한 2024년 제2차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심사 기준. 사진 = 진흥원 공고 갈무리 

이처럼 문체부와 정부의 문학계 지원 방식이 국가 기관 위주로 시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국가 주도 번역 지원 사업은 소비자의 요구 등과 작품의 이해를 고려한 번역보다 심사위원의 평가 기준이 우선되고 있다.

김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현 출판·도서 분야와 번역 지원사업은 작품에 대한 선제적 검토 후 선별 지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진흥원이 최근 진행한 세종도서 사업, 수출용 출판 홍보자료(초록·샘플) 지원 사업(번역 분야),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심사 기준에는 '시대 상황 및 미래 지향적으로 기획력이 돋보이는 도서'(전자책 제작 지원), '콘텐츠의 해외 진출 가능성'(초록·샘플 지원) 등 모호한 기준에서의 작품 가치관·가능성 평가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김 평론가는 "작가가 (해외) 출판사를 통해 세계 어느 나라 국가든 팔릴만 하다고 생각되면 적극적 번역을 거쳐 발간하게 되고, 그런 부분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조금씩 지원한다면 분명 (출판사도) 선호할 것"이라며 "지원은 해주되 간섭하지 않으면 한국 문학 우수성은 알려진다"고 짚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해외에 처음으로 알린 출판사가 소규모 독립서점이었다는 점도 함께 조명된다.  김 평론가는 "내가 사는 동네에 걸어서 만날 수 있는 서점이 있는데, 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을 만날 수 있고 책과 관련된 행사도 열린다면 책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지지 않겠냐"며 "(한국 문학계 부흥과 관심 유지를 위해서는) 접근성을 넓히고, 접근성도 다양한 시각에서 취향을 맞춰야 한다"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영화 성장을 대기업 체인이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양하게 개성 있는 서점들이 두루두루 접근 가능한 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프로젝트 잘하거나 명망 높은 작가들과 사업할 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특화되고 차별화된 다양한 매력 그 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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