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가 23일 서울 마포구 영화사 레드피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이하영 기자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가 23일 서울 마포구 영화사 레드피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이하영 기자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대표가 한국영화 산업의 주요 문제로 투자 축소와 독립영화·중소형 영화 제작 등 창작 기회 감소를 짚었다. 이 대표는 한국영화 부흥을 위해 일관되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책적 지원과 멀티플렉스 등 극장의 객단가(소비자가 표를 구매하는 비용) 중심의 정산 투명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영화사 레드피터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 대표는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소속이다. 영화인연대는 지난 7월 정부의 영화예산 삭감 등에 대항한 연대 활동을 위해 발족한 단체다.

이 대표 설명에 따르면 현재 영화인연대는 PGK,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예술영화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를 간사단체로 총 20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영화인연대는 객단가 중심 정산 투명화와 예술영화·지역영화 지원을 위한 독립영화 분야, 두 축을 주요 목표로 활동 중이다.

이 대표는 극장 방문객이 팬데믹 이전의 60%가량으로 줄어든 이유에 'OTT 보급' 외에도 문화 소비의 다변화를 짚었다. 이 대표는 "팬데믹 전후로 문화적 소비가 다변화됐고, 그러다 보니 영화 관람료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지 않은데다 가격이 오르기도 해 더 신중하게 소비하려는 경향이 생긴 듯하다"며 "극장에 가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비슷한 영화를 같은 시간대에 상영하니 멀티플렉스일 필요가 있을까 싶은 문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관객이 생각하는 기대치만큼 돈을 내고 극장을 찾아가 볼 정도의 영화가 부족하고, 극장이라는 공간의 서비스가 가격과 다른 문화생활에 비해 '이 정도의 가치가 있나' 싶어진 것 같다"며 "이런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섞여 극장이라는 공간이 일반인들에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보다는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찾아가는 곳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 상반기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한국영화의 매출은 팬데믹 이전 90%를 회복했다. 이 대표는 "영화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라며 "현재 영화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영화들이 제각기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형식이 아닌 일부가 90%의 매출을 거두고 나머지는 실패하는 구조"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팬데믹 이전부터 내재된 객단가와 스크린 상한제 등 분리공정성과 정산 불투명성 등의 문제가 산업 현황이 안 좋아지며 도드라진 것을 두 번째 문제로 지목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극장 전체 스크린의 90% 이상 같은 영화를 틀어도 관례적으로, 법적으로 제제하지 못한다"며 "(극장의) 수익 추구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균형적으로 산업이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26일 서울 용산구 CGV 본사 앞에서 열린 멀티플렉스 3사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하영 PGK 운영위원, 추은혜 변호사. 사진 = 이하영 기자
26일 서울 용산구 CGV 본사 앞에서 열린 멀티플렉스 3사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하영 PGK 운영위원, 추은혜 변호사. 사진 = 이하영 기자

객단가 중심 정산 투명화는 멀티플렉스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의 입장권 매출의 불명확함과 정산 공정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 지난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관객이 실제로 지불한 가격과 영진위가 운영하는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FIC)에 등록된 가격이 최대 4000원가량 차이가 난다는 점을 비판했다.

영진위는 KOFIC에 등록된 영화 티켓 판매액의 3%를 영화발전기금으로 징수하고 있어, 객단가의 투명화는 영화산업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인연대도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멀티플렉스 등 극장의 불공정 정산 행위를 중단하고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대표는 "모든 산업은 정산이 투명해야 생산·소비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객단가만 해도 정산 자체가 불투명하다"며 "극장 측은 정산 과정이 투명하다고 주장하니, 영화인들은 할인율 등 수익이 정당하게 제작·배급사에 계약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진흥공사가 1999년 영진위로 바뀔 당시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영진위가 독립적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정권의 영향과 무관히 영화 산업 정책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같은 맥락으로,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지불한 비용의 일부(영발기금)로 다시 재원을 만들어 독립영화를 지원했다"고 영발기금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정부가 대체 재원 마련 없이 영발기금을 폐지한 것에 대해서도 "(폐지 시) 영진위 재원의 원천이 되는 정부 영향이 클 수밖에 없어 산업 유지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제작·인력 양성 구조 분야 정책적으로도, 영화가 가져야 할 독립성과 자율성 원칙을 어떤 정부든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 분야 부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일정한 지원과 간섭하지 않는 자세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 대표는 "영화인연대 내부에서도 '영진위가 해야 하는 일인데 왜 우리가 모여서 이런 고민을 할까'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진위 설립 취지가 문체부의 영향을 덜 받고 우리 발전 기금으로 최대한 잘 운영해 영화산업을 자율적으로 키워보기 위함이었다"며 "영화인연대는 영진위가 본 목적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영진위가 영화인들의 고민들을 정부·문체부와 연결해 숨통을 뚫어줄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 내 상반기 흥행작 10작품. 한국영화 개봉작 중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한 200만 관객 이상 동원한 영화는 없다. 사진 = 영진위 보고서 갈무리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 내 상반기 흥행작 10작품. 한국영화 개봉작 중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한 200만 관객 이상 동원한 영화는 없다. 사진 = 영진위 보고서 갈무리 

이 대표는 최근 중·소형 영화 제작 축소와 흥행 양극화에 대해 "창작의 기회부터 줄었고, 흥행이 보장된 영화만 투자되다 보니 내년에는 극장에 틀 작품이 없다는 걸 다들 알면서도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OTT를 제외하면 다양한 영화를 제작할 창작 여건이 사라지고, 영화 투자도 줄어들며 신인 감독 등을 기용할 자리는 사라지고 상업적 흥행 공식(클리셰)에 따른 유명 감독·배우 등의 작품도 더 보수적으로 투자를 검증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제작이 축소되는 것은 영화산업의 기존 투자 방식과 외부 투자 유입이 감소한 이유가 크다. 앞서 이하영 PGK 운영위원은 이를 두고 "외부 투자자의 관점에서 볼 때 영화산업은 극장의 수익 정산 과정이 불투명하고 위험부담이 큰데 수익성 담보가 어려워 재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대표도 "근래 10년 동안 가장 왕성하게 투자·배급을 진행한 주요 회사들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했다 보니, 이들을 중심으로 다른 투자자들이 부분 투자를 하는 형식으로 영화가 제작돼 왔다. 그래서 구심점이 될만한 중소 규모의 투자·배급사가 설 자리가 없었고, 주요 회사들이 빠지고 나니 새로 유입되기보다는 다 없어진 분위기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그중 한두 개가 잘 돼서 조금씩 발전할 수 있는데, 영화산업 특성상 누구나 다 성공하려 하면 어떤 결과도 내지 못하기도 한다"며 "손실을 보더라도 비용을 투입해 좋은 작가·감독을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협업해 성공을 이끌어야 하는데, 누구나 '될 것'만 찾으니 외부의 시선으로는 투자하기 위험한 산업처럼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지난 8월 2025년 예산안을 통해 중예산영화 제작지원 사업 신규 운영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해당 사업이) 어렵게 마련됐고, 아주 중요하다"면서도 "금액의 규모가 아닌, 중·소형 영화라도 여러 편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관 펀드 등 사업 연계를 통해 중·소규모 영화의 제작비를 다각도로 마련해 제작 지원이 필요한 영화의 지원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극장 측이 영화산업 축소의 이유로 짚는 '제작비용 증가'에 대해서 "불황보다는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우리의 숙제이기도 하다"고 제시했다.

이 대표는 "OTT의 과감한 투자 등 여러 이유로 제작비가 높아졌는데,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규모가 있기 때문에 다 같이 현재에 맞춰 비용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며 "굉장히 중요한 숙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단, 이 대표는 인건비 등 제작비 상승의 여부보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전제를 달았다.

이 대표는 최근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단독 지원 예산 삭제 등과 관련해서도,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예산 복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지원이 없어지면 그런 게(산업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증액은 안 하더라도 우리가 어렵게 쌓아온 토대이니 예전만큼은 회복되도록 무조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시도가 펼쳐질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든 없애고 줄이는 것은 문화 부흥을 위한 정책과는 반대 방향"이라고 말했다.

상업영화의 투자 축소와 더불어 독립영화 분야의 주요 안건인 창작 기회 감소에 대해서도 "독립영화 지원은 R&D(연구개발) 예산과 비슷해, 지원을 없앨 경우 단순히 내년에 영화가 없는 문제로 그치지 않고 인력이 떠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영화인연대는 극장과의 상생관계 구축과 독립영화·지역영화 생태계 보존을 주 목표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영화인연대 안에도 여러 단체가 있어 각자 목소리가 다양하다"며 "객단가 중심 정산 투명화, 홀드백(극장 상영 후 2차 시장 공개) 기간 지정, 스크린 상한제 등을 산업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축으로 두고, 독립영화와 지역영화를 지키면서 창작활동을 조성해 독립영화 생태계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두 번째 축"이라고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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