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하는 예술가라면 고민하기 마련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건 당연하고, 비평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면 더 좋을 것이다. 천하의 비틀즈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후기에 들어서야 <화이트 앨범> 같은 실험을 펼칠 수 있었다. 영화 산업이 여러모로 도전을 받고 있는 요즘에 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어깨는,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한동석 감독의 <씬>을 보다 새삼 그런 생각을 했다. 신인답게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며, 데뷔 전에 영화의 공력을 착실히 쌓은 흔적마저 감지되는 터였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도전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러웠다.

<씬>의 예고편은 이 영화가 좀비 장르를 끌어온 공포영화일 거라고 짐작하게 만든다. '춤을 통해 죽은 자가 깨어난다'는 줄거리를 통해 춤과 좀비를 결합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는데, 그게 흥미를 끌기엔 딱히 신선하게 들리진 않는다. 홍보 자료에서 '실험적 요소'라는 문구를 사용했지만, 그것 또한 영화에 대한 적절한 소개는 아닌 듯하다. <씬>으로 들어가는 문이 이렇게 좁은 건 이 영화가 어렵거나 실험적이어서가 아니라, 문 자체가 여러 개인 탓이다. 본격적인 오컬트 장르로 진입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문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내달려야 하는 영화, 폐쇄 공간에 갇힌 자들의 사투를 다룬 영화'로 중반을 지나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영화 한두 편을 찍을 소재 아닌가.

<씬>의 백미는 중반을 지나 영화의 본색이 드러나는 부분부터 맛볼 수 있다. 한동석은 단순히 재미로 이런저런 장르를 섞은 게 아닌 것이, 차곡차곡 쌓인 장르의 벽돌들이 영화의 진경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놀라운 엔딩이 그 흔한 반전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말은 <씬>이 반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엉뚱한 길을 걷다 난데없이 반전을 들이미는 여타 영화의 구조에서 <씬>은 확실히 벗어나 있다. 엔딩 지점에서 앞을 되돌아보면 '아,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들쭉날쭉 튀어나온 벽돌처럼 보였던 것들이 마침내 단단한 벽을 빚은 좋은 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단단하다'고 표현하긴 했으나, 신인이기에 무결에 이르기엔 많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여러 장르를 거치다 보니 늘어지는 부분과 팽팽한 부분의 정돈이 아쉽다. 게다가 자칫 B무비로 희화될 수도 있었는데, 그걸 구한 건 훌륭한 배우들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이상아를 비롯한 중견 배우들과 그간 독립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조화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다. 필자의 짐작에 <파묘>의 성공으로 인해, 장르를 공유하는 <씬>의 극장행이 서둘러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을까, <씬>에 대한 대중적 반응은 그리 뜨겁지 못하다. 이대로 묻히기엔 많이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석이라는 감독의 다음 작품이 보고 싶은 까닭이다.
글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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