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랜 75>는 에둘러 설명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가까운 미래, 일본 정부는 75세 이상 노령층의 죽음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고령화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다. SF영화이면서도 리얼리즘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실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노년층의 비율이 증가하는 반면, 출산율은 낮아져 청년들의 불만이 들끊는다. 영화의 첫 대사 -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를 끼치기 싫을 것이다. - 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주장으로 들린다.
감독 하야카와 치에는 옴니버스영화 <10년>(2018)의 한 에피소드에 참여해 같은 소재를 다룬 적이 있다. <플랜 75>는 그것의 확장판이다. 동아시아에서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된 <10년>은 10년 후의 사회를 상상해 보는 시리즈였다. 미래에 대한 질문과 예측이 대개 디스토피아적인 경향을 띠는 건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다. 사회가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랄까. 자연스레 이러한 주제는 SF영화의 오랜 주제가 되어 왔다.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미래는 리처드 플라이셔의 <소일렌트 그린>(1973)에서 이미 다뤄졌다. 그 영화에서 예언한 미래가 2022년인데, 공교롭게도 <플랜 75>가 나온 해가 2022년이다. 50년 전의 암울한 SF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10년>의 에피소드가 담당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것과 비교해, <플랜 75>는 다양한 인물의 관점 아래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세대, 계급의 입장을 전달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대신 고도자본주의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의 일상을 빌려 삶의 고단함과 소중함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인 78세 여성 미치는 독립적인 삶을 원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 힘들다. 딸과의 연락은 끊어진 지 오래,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극중 죽음을 선택하게끔 지원받는 대상은 저소득층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소비 활동이 가능한 중산층 이상의 사람에게 '플랜 75'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디스토피아적인 SF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계급의 문제와 결합하면서 더욱 비관적인 화두로 이어진다. <소일렌트 그린>의 인물은 인공적인 죽음의 장치 속에서 자연 풍광을 바라보다 세상을 떠난다. 미치는 그것과 반대의 선택을 한다. 다행히 그는 폐기물로 취급받지 않았지만, 그의 존엄성이 지켜졌다고 확답하기엔 망설여진다. 그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정확하게 말해 그녀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야말로 진짜 비극일 것이다. <플랜 75>는 논쟁적인 소재를 차분하고 사려 깊게 풀어나간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칸영화제에 초청돼 황금카메라상 부문에 '특별언급'을 받았으며, 일본의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의 베스트10으로 선정되었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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