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크레딧이 채 올라가기도 전 지직거리는 잡음으로 시작한다. 예전 레코드 플레이어 시절에 들었던 익숙하고 따뜻한 소리. 이어 근래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1.66:1 화면비율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미국 뉴잉글랜드의 소년 기숙학교에서 전개되는 영화에서 특정 시대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으로 가지 못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돌보게 된 선생 폴의 이야기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공간적 배경보다 시대의 분위기다. 영화가 폴을 역사 교사로 설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시시때때로 과거의 의미와 현재적 가치를 역설한다. 질문해보자, 현재 아이들을 책임지는 건 학교인가, 아니면 가정인가. 여기서 책임이란 먹을거리나 입시 준비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길을 잃은 아이들이 의지하고 싶은 존재는 누구인가, 그들에게 어른은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하는 것일까, 꼰대로 취급받는 어른이란 단어는 어떻게 해서 아름다운 의미를 상실한 것일까.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1970년의 시간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더듬고자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970년인가.

그 시간은 미국 영화사에서 뉴아메리칸시네마가 형성 및 진행되던 시기다. 극중 폴과 학생 앵거스가 극장에서 관람하는 아서 펜의 <작은 거인>(1970)이 그즈음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인 것은 맞다. 하지만 페인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수정주의 웨스턴과는 상관이 없다. 캣 스티븐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페인이 불러내기를 의도한 이름은 바로 할 애쉬비임을 알게 된다. 뉴아메리칸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다른 이들과 달리 인간미와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만든 인물. <바튼 아카데미>의 곳곳에서 애쉬비의 유산을 찾는 일은 흥미로운 영화 수업처럼 보인다. 스티븐스의 노래에 맞춰, 세대를 달리하는 아웃사이더끼리 교감한다는 점에서 <해롤드와 모드>(1971)가, 추운 계절에 미국 동부를 오가는 남자들의 여정이란 점에선 <마지막 지령>(1973)이, 그리고 변경에서 웅크리고 지내던 존재가 세상 바깥으로 걸음을 뗀다는 점에서 <찬스>(1979)를 곧바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질문해 본다, 페인이 감독으로 성장하기 전 보고 자랐을 영화의 세계에서 애쉬비의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주제 중 하나는 아버지의 부재다.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에 반항하는 자들은 길 위를 걷는다, 그리고 방황한다. 오래 전 그 시기를 통과했던 폴과, 지금 그 시기를 통과 중인 앵거스의 얼굴에서 페인은 요즘의 아이들을 발견한다. 15세에 바튼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폴은 아버지와 결별한 채 홀로 수십 년을 살아왔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한 뒤, 앵거스는 아버지의 손길이 그립다. 그들 곁으로,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은 주방장 메리가 나란히 선다. <바튼 아카데미>는 그들 사이를 억지로 엮어 유사가족을 만드는 짓은 하지 않는다. 폴에게 "인간적인 척이라도 해라"는 주문이 나오지만, 영화는 일부러 감동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유의 영화와 거리를 둔다. 대신 밉상스러운 어른이자 선생으로 행세하던 폴이 아들과 같은 존재인 앵거스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도록 한다. 쉬이 감동을 주는 편한 길 대신, 눈물 한 방울이 얼마나 값진지 깨우치는 영화의 선택은 옳다. 2, 3월은 아카데미 시즌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장 부분의 후보에 올랐다. 한국에서 늦게 개봉한 할리우드의 수작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이 시기에 우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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