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도시4>의 개봉이 목전이다. 한국 상업영화는 이미 개봉 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영화계는 이번에도 주먹왕의 마법이 통할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시리즈의 2, 3편이 거둔 천만 관객의 흥행을 이번 편이 이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개봉 초반에 어마어마한 관객이 극장을 찾아서 볼 것이라는 사실이다. 통합 3천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시리즈가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영화를 먼저 본 필자로서는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앞서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허명행이 2, 3편의 이상용 감독으로부터 메가폰을 넘겨받았는데, 감독에겐 미안한 말이나 중요한 건 주인공 마석도이지 감독이 아니다. 이 시리즈는 전형적인 캐릭터 상품인 까닭이다. 전형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영화의 캐릭터를 시리즈화해서 성공시키려면 어지간한 노력에다 운까지 따라야 한다. 더욱이 마석도란 캐릭터와 일체가 된 배우 마동석의 존재감은 21세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에서도 찾기 힘든 경우라 하겠다. 기억이 맞는다면, 1990년대 박중훈, 최진실의 코믹 캐릭터가 사라진 이후 이런 성공 사례가 어디 있었나 싶다.
<범죄도시3>을 보면서 이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작진은 거꾸로 '왜 그래야 하는가'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바뀐 건 범죄의 형태일 뿐, 구성원과 역할은 거의 판박이다. 마석도의 주변 경찰들이 사건에 임해 버거워할 때마다, 마석도가 뛰어들어 주먹만 휘두르면 범인은 나가떨어지고 사건은 저절로 해결된다. 무시무시한 범죄자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악행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다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마석도와 한판 대결을 벌인다. 그리고 어느덧 붙박이 감초 역할이 된 장이수가 틈틈이 등장해 만담 수준의 웃음을 안겨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므로 <범죄도시4>를 움직이는 동력은 세 가지 소리다. 마석도가 던지는 주먹의 '퍽퍽' 소리, 악당 백창기가 칼을 휘두를 때 나오는 '슉슉' 소리, 그리고 장이수의 어처구니없는 행동과 말투가 빚는 '키드득' 소리. 세 소리는 동시에 터지는 대신 무작위의 순서대로 나열되면서 영화에 기이한 운동성과 불규칙한 리듬을 제공한다. 그게 연출의 의도이고 영화의 방향성이다. 조악한 대사와 엉성한 연기는 영화적으로 상관없다기보다 무지막지한 운동성 앞에서 부차적 요소로서 작용할 따름이다. 보통 영화에서 중요시되는 게 여기선 일종의 장식품마냥 뒤로 물러나는 형국인 셈이다. 일찍이 조셉 폰 스턴버그는 데뷔작 <구원을 찾는 사람들>(1925)에서 '영화는 육체보다 생각을 담기를 회피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것의 가장 적합한 예에 해당한다.
좋다, 다 양보하더라도 관객이 느끼는 즐거움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만듦새만 평가하면 이 시리즈는 예전에 만들어진 싸구려 액션영화과 다를 바 없다. 영화에 만족한 대다수의 관객이 언급한 '통쾌함'만 구하겠다면 구식이어도 무슨 상관이겠나, 여겼다. 한편으로 현실의 답답함을 영화에서나마 해소하려는 것으로 판단해, 허구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착시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실 이 시리즈는 구식인 듯 영악하게 노는 21세기적인 영화다. 게임을 즐기는 세대에게 게임의 공간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며, 그 안에서 액션을 대리로 행사하는 캐릭터에 따로 가치 판단은 불필요하다. 마석도와 그의 영화는 그런 세계에 맞춰 고안된 결과물이 아닐까. 리얼리즘을 가장한 판타지, 그 앞에서 굳이 현실을 대입해 판단하는 짓거리는 나 스스로 버리기로 했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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