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황정리의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스마일스토리, 2024)이 출간되었다. 이두용 감독의 〈돌아온 외다리〉로 데뷔하여, 〈사형도수〉 그리고 무엇보다 저 유명한 〈취권〉의 염왕심각-염철식 역을 맡은 사람이 바로 황정리이니, 영화 혹은 무협영화의 팬이라면 황정리의 자서전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게 더 이상할 터이다.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에서 황정리는 그 제목처럼 황정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협영화 배우·무도가로서의 삶을 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황정리는 어릴 적 발견한 원심력의 원리를 태권도에 어떻게 접목시켰는지, 〈취권〉에서 성룡을 발탁한 경과나 무술 '취권'을 만든 계기 등을 폭넓게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 그 자체가 아니다. 호사가로서 이 책에 소개되는 잡사—이를테면 성룡을 추천한 게 황정리였고, 그가 네 번째 후보였다는 점—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로서 걸출한 자서전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삶의 통찰은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에 거의 없다.

여기서 말해보고 싶은 것은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을 둘러싼 이야기다. 추측컨대 영화 팬들 중에서도 이 글을 통해서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의 출간을 알게 된 사람이 대부분일 터이다. 온라인 서점 등지에 '영화', '시네마' 등의 관심사를 종종 검색하는 이상한 버릇이 없었더라면, 필자 또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의 모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는 40으로 극히 낮고, 웹에서도 이 책의 독후감·서평 등을 찾아볼 수 없다.

기실 이 책을 산 사람이라면, 이 책을 타인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책의 가격도 2만5000원으로 낮지 않거니와, 책에 사용된 이미지의 해상도도 매우 떨어지며, 일부는 AI로 조잡하게 만든 것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나[황정리-인용자]의 팬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나의 팬은 전 세계적으로 7억 5천만명으로 보고되었다."(96쪽) 같은 믿기 어려운 정보까지 있으니, 자료로서도 큰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국 영화책 시장의 맥락, 특히 최근 '영화이론'을 지향하는 무게감 있는 영화 책이 잇따라 출간되는 상황에서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지하듯 영미권에서는 영향력 있는 배우·제작자 등의 자서전이 널리 읽힌다. 배우·제작자 등에 전문적인 출판사가 붙어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므로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과 같은 엉성한 만듦새도 보기 드물다. 작년 출간된 제작자 이우석의 자서전 또한 황정리 자서전과 비슷한—거의 자비 출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한국인 영화배우·제작자의 콘텐츠를 한국의 영화저널리즘이 발굴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한편,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책의 만듦새가 부족하다고 하여 '무게감 있는 영화 책'과 달리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 같은 책을 무시하는 건 맞는 것일까? 영화사의 특정 국면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오늘날 영화 관객에게도 모범적인 모델을 제공하는 시네필(cinephile)들은 근사하고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견 저속하고 더러운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능숙했다. 영화 저널·출판 시장의 황정리에 대한 무시가 결과한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의 조잡한 만듦새와, 그 조잡한 만듦새로 인한 영화 팬들의 『황정리 나의 인생, 나의 무술』 무시, 이것이 오늘날 한국 영화문화의 어떤 구멍을 보여준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금동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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