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에서 가장 열심히 본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거구의 사내들이 링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모습은 거부하기 어려운 스펙터클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Please, don't try this at home"이라는 경고 영상이 나왔지만 집(home)이 아니니까 괜찮잖아, 라는 같잖은 변명을 뇌까리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기술을 따라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별다른 부상 없이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었던 건, (과거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은 쇼다'라는 '폭로'가 가능했다는 게 놀랍지만) 프로레슬링이 일종의 연극이며 기술은 합을 맞추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당히 시늉을 하며 역할놀이를 했다. 프로레슬링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WWE(프로레슬링 단체)의 회장으로 등장하는 빅스 맥마흔(Vince McMahon)도 당연히 일종의 캐릭터일 거라 생각했다.

선수에게 뺨을 맞고, 선수의 얼굴을 자신의 엉덩이로 뭉개고, 아들에게 드롭킥을 당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남자는 아무래도 회장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중후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빈스 맥마흔은 WWE의 '진짜 회장'이다. 미국 규모에서도 충분히 갑부에 속하는 노년의 남성이 상술한 굴욕적이고 천박한 장면을—으슥한 곳이 아니라—대중 앞에서 노출한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독특하다.

<미스터 맥마흔>(크리스 스미스, 2024)은 이 독특한 인물인 빈스 맥마흔의 개인사를 조명한 6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다큐멘터리는 시간 순으로 빈스 맥마흔의 삶을 따라 간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통해 프로레슬링에 입문, 기존 지역 단위 프로레슬링을 전국 단위로 바꿔놓고, 레슬링에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극대화하며, 가족을 비롯한 자신을 '캐릭터'화하여 성공적인 흥행을 이루는 '야심의 기업가'로서 빈스 맥마흔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동전의 이면처럼 '야만의 기업가'로서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서 끊임없이 성폭행과 성추문을 일으키고 선수들을 착취하는 빈스 맥마흔의 모습도 폭로한다. 빈스의 야심과 야만성이 모두 1980년대 이후 프로레슬링과 미국의 문화사에 깊이 관련되기 때문에, 그의 삶을 좇는 것만으로도 프로레슬링과 미국의 현대 문화사를 개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인물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는 인물의 독특함을 통해 흥미를 뽑고 규모(scale)를 통해 교양을 전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만도 <미스터 맥마흔>은 꽤 즐겁고 유익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허나 지금 <미스터 맥마흔>에 굳이 글을 보태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미스터 맥마흔>은 빈스의 곁에 있었던 브렛 하트, 존 시나, 셰인 맥마흔 그리고 빈스 본인에게 반복적으로 '빈스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이것이 <미스터 맥마흔>을 흘려보내지 않고 잡아두고 싶은 이유다.

실제로 일어났던 하나의 해프닝을 계기로 만든 표독한 기업가 캐릭터-미스터 맥마흔과 빈스 맥마흔 사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빈스 맥마흔은 현실의 법·도덕 세계 속 그가 저지른 과오를 프로레슬링의 야만적 세계 속 미스터 맥마흔의 캐릭터로 회수한다.

이를 통해 현실의 과오는 과장된 '미스터 맥마흔'의 가면을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소화되며 눙쳐진다. 이러한 방법이 반복되면서 '빈스 맥마흔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빈스는 미스터 맥마흔이 자신과 전혀 다르다고 선을 긋지만, 그의 주변 모든 사람들은 빈스가 곧 미스터 맥마흔이라고 말하듯이.

공교롭게도 <미스터 맥마흔>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빈스와 WWE에서 시합을 했던)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나온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빈스 맥마흔의 방식을—기실 빈스 맥마흔의 아내는 트럼프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모방했다고 언급한다.

빈스의 엔터테인먼트를 계승한 UFC의 수장인 데이나 화이트 그리고 기믹(gimmick)을 보편적인 문법으로 받아들인 많은 래퍼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기성 정치에 속하지 않았던 트럼프는 다소간 대중의 영웅으로 소환되었다. 결투기와 힙합이 (남성적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대중의 오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경향성의 의미는 적지 않아 보인다.

금동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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