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 포스터.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가여운 것들' 포스터.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가 시작하면 한 성인 여자가 강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이 여자의 시체는 미치광이 천재 해부학자인 고드윈 백스터(윌리엄 디포)에게 발견된다. 고드윈에 의해 새로운 뇌를 이식 받아 되살아난 여자는 벨라(엠마 스톤)라는 이름을 받는다. 벨라는 성인 여자의 신체를 갖고 있지만 신체를 가누지 못하고 하루에 열 개 남짓의 단어를 새로이 배운다. 이쯤이면 눈치 챘겠지만, 그렇다. 벨라는 태아의 뇌를 이식받았다. 태아의 뇌를 가진 성인 여성의 신체. 이 기괴한 조합처럼 고드윈의 집에는 이상한 조합의 생물로 가득하다. 몸은 거위이지만 얼굴은 불독인 프렌치불덕(Frechbull Duck)부터 오리의 얼굴에 강아지의 몸이 붙어 있는 덕독(duck dog) 등을 여러 마리 키우며, 고드윈 또한 아버지로부터 생체 실험을 많이 받아 식사를 할 때면 이상한 거품을 하늘로 쏘아 올리곤 한다. 이렇게 바깥세상의 상식과는 무관한 곳에서 자란 벨라는 호색한인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이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서, 여행을 떠난다. 성인의 신체를 갖고 있지만 의식은 유아에 가까우며 심지어 유아기조차 비상식적인 시공간에서 지낸 벨라의 여행, 이것이 〈가여운 것들〉(요르고스 란티모스, 2023)의 설정이다.

세계의 이해 방식, 달리 말하면 '상식'이 없는 벨라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상식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따른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정조(貞操)와 같은 사회도덕이 없는 벨라에게 창녀는 돈도 주고 쾌락도 취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다. 슬프거나 겸연쩍은 건 애인이라고 생각한 덩컨뿐이다. 이처럼 비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집단/사람이 세계를 만나는 상황(부조리)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이전 작품을 따라온 사람에게는 익숙할 터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주목을 받기 시작한 〈송곳니〉(2009)부터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폐쇄적 사회와 바깥 세계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관객의 상식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리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만의 것이 아니다. 이 부조리는 오늘날 그리스의 산물이다.

코스타 가브라스나 테오 앙겔로풀로스 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최근 그리스는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국가가 아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와 영화하면 〈맘마 미아〉의 사례처럼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2009년 경제 위기를 전후로 하여 요르고스 란티모스, 아디나 레이첼 창가리, 요르고스 조이스 등 서로 긴밀히 협업하는 그리스의 감독들은 부조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오늘날 이는 그리스의 기이한 물결(Greek Weird Wave)이란 이름으로 세계 영화제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리스 비극이 국가의 도덕과 가족의 도덕의 충돌에서 관객에게 성찰의 여지를 제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의 기이한 물결을 지극히 '그리스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가여운 것들〉을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순진함을 근거로 세계를 성찰하는 이야기가 이제는 진부하거니와 초현실주의적 양식을 끌고 와서 만드는 이물감도 딱히 새롭다고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 맥스(라미 유세프)에게 고드윈이 하는 말처럼 〈가여운 것들〉에는 "평범한 두뇌가 비범한 척하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송곳니〉 이래로 칸, 베니스, 아카데미의 상을 고루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부인할 수 없는 그리스 기이한 물결의 핵심이다. 〈가여운 것들〉 또한 올해 미국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스 기이한 물결의 현재를 확인하고 싶다면 〈가여운 것들〉은 괜찮은 선택일 테다.

금동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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