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락의 해부' 포스터.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추락의 해부' 포스터. 사진 = 네이버 영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설산의 외딴 산장에서 한 남자, 사뮈엘이 추락사한 시체로 그의 아들 다니엘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 산드라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 〈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2023)는 산드라의 법정 공방을 다룬 이야기다. 진부한 사례지만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 1950)이 탁월하게 짚어냈듯 법정에서 진실은 한 사람의 주관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다. 한 사람 이상의 주관이 합치될 때 진실-객관성에 근사할 수 있다. 그러나 〈추락의 해부〉의 사건이 일어난 산장에는 죽은 사뮈엘, 피고인인 산드라 그리고 다니엘이 살고, 다니엘은 산책을 다녀와서야 사뮈엘의 시체를 발견했거니와 시각 장애인이기에 상황을 조감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추락의 해부〉에서 시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피고인 산드라 뿐이다. 산드라는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가 실토하는 주관적 경험은 법정에서 진실의 자격에 도달할 수 없으며 급기야 자기변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흔한 법정 스릴러라면 산드라는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지만 영화의 결말쯤에 발견한 결정적인 증거로 혐의는 극적으로 벗겨질 테다. 혹은 반대로 무고한 줄 알았던 산드라가 실은 가해자였던 걸로 밝혀지거나. 그러나 〈추락의 해부〉는 두 가지 방향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는 객관적인 장면이 없으므로 산드라가 어떤 판결을 받건 그것이 정당하다거나 부당하다고 확언할 자리가 관객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얻는 효과가 〈추락의 해부〉의 목적이 아닌 게다. 〈추락의 해부〉의 관심은 어떤 경우에 말이 진심/진실로 해석(translation)될 수 있는지, 그 조건을 따져 묻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탁월한 건 그 조건에 대한 질문이 비단 이야기의 설정인 법정의 논리에 국한되지 않고 산드라-사뮈엘의 관계부터 영화를 보는 관습까지 아우른다는 데 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추락의 해부〉의 법정 장면에는 시점 쇼트와 그냥 쇼트를 분간할 수 없는 순간이 여럿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습을 건드린다.

〈추락의 해부〉의 진실의 미결정을 견디며 그것을 서사의 진행으로 견인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산드라 역을 맡은 산드라 휠러다. 산드라 휠러는 자신의 무고함을 적극적으로 강변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침대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에서의 무표정한 얼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가장 초반 소설가인 산드라는 인터뷰를 온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독자를 그냥 의자에 앉아 소설을 읽게 두지 않는다. 나는 독자를 소설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정말로, 〈추락의 해부〉는 관객을 영화의 일부로 만들어 시종일관 진실과 사실을 셈하게 만든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리는 보기 드문 영화다. 아차, 한 가지 중요한 걸 놓쳤다. 사뮈엘, 산드라, 다니엘과 함께 매우 중요한 강아지 스눕이 나온다. 스눕은 그의 이름처럼 영화에 펼쳐지는 여러 사건을 엿보았을(snoop) 테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스눕의 눈에서 진실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추락의 해부〉는 7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금동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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