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기억할 때 만화가, 이야기, 장면이 아니라 캐릭터를 자주 떠올린다. 만화를 읽어보지는 않아도 유명한 캐릭터의 이름은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포켓몬스터를 챙겨보는 사람은 드물지만 볼에 빨간 점이 있는 노란색 쥐의 이름이 피카츄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듯 말이다. 만화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만화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만화에서 캐릭터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만화규장각 총서의 30번째 단행본으로 펴낸 『한국 만화 캐릭터 열전』은 다섯 명의 필자가 1900년 식민지 조선 신문 만화부터 오늘날 웹툰에 이르기까지, 한국 만화에 등장한 주목할 만한 캐릭터와 캐릭터들의 특징과 의미를 분석한 책이다. 1900-2020년 총 120년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한국 만화 캐릭터 열전』이 언급하는 캐릭터들도 방대하다.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캐릭터만 해도 한참을 열거할 수 있다. 멍텅구리(멍텅구리 헛물켜기), 구리귀신(구리귀신), 고바우(고바우 영감), 고철이와 요철이(발명왕 요철이), 까치(공포의 외인구단), 구영탁(요절복통 불청객), 조석(마음의 소리), 미지(미지의 세계) 등등…
캐릭터가 만화의 핵심을 이루는 만큼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종의 '한국 만화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은 「2020년대 이후: 낯선 주인공들을 상상할 수 있다면」이다. 이 글은 〈순정 히포크라테스〉, 〈여자친구〉, 〈미지의 세계〉를 통해 2010년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중적인 (여성) 캐릭터 상의 변모를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요구를 〈순정 히포크라테스〉의 인물들은 반영한다. 그러나 〈순정 히포크라테스〉의 캐릭터들이 주체적이기 위해 갖고 있었던 조건—똑똑함과 훌륭함—은 능력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히 이러한 능력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창작자/독자가 생기기 마련이며, 이는 여성에 대한 기대를 부정하며 우울하고 폭력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자친구〉와 〈미지의 세계〉로 이어졌다. 기실 앞에서 "동조하지 않는 창작자/독자"라고 썼듯, 캐릭터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충족해야하므로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만화를 경유한 '한국 심성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필자가 제일 재밌게 읽은 글은 오혁진의 「1960~1970년대: 명랑 담론 그리고 명랑만화의 캐릭터」였다. 저자는 이 글의 주제를 청탁 받은 것으로 보인다. 첫 문장부터 "1960~70년대 만화 캐릭터 열전: 서민의 애환과 해학들 대변하다. 이 글의 주제는 당혹스럽다"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움은 이해할 만하다. 박정희 체제라는 점에서 하나로 묶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1960~70년대는 4·19, 5·16, 압축적 근대화, 대규모 도시 공간의 재편이 일어난 단절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역사적 맥락을 눙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연속성과 단절성"을 아울러서 형상화 할 수 있는 토픽으로 '명랑' 담론에 주목해서 당대의 만화를 살펴나간다. 이 글의 백미는 이 '명랑'에 내재한 일탈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저자는 단순한 내용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명랑만화의 형식으로 단순성과 과장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과장성을 세밀하게 읽어내 그 안에서 박정희 체제와 불화하는 "불온성"을 읽어낸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물리 법칙에 구애 받지 않고 하늘로 펄쩍 뛰고, 아버지가 들어올 수 없는 비밀 실험실로 향한다. "칸과 칸 사이 홈통에 어린이의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없는 요철이의 아버지. 그리고 요철이는 어른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바로 이 공간에서 언제나 그렇듯 명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49쪽) 1960~70년대라는 난제를 '명랑'이라는 유연한 토픽으로 돌파하고, 급기야 그 '명랑'을 통해 1960~70년대를 뛰어넘는 이 글을 오늘날의 모범적인 비평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오종은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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