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상파 콘텐츠가 지닌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진단이 제시됐다.

한국방송학회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미디어 패권시대,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와 경쟁력 모색’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고, 미디어 공공성의 소멸 위기 속 지상파 방송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과 정책 대안을 모색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를 주제로 첫 번째 발제에 나선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과거 절대적이던 지상파의 시장 영향력이 상당 부분 상실된 것은 됐지만,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로 기존 방송이 완전히 대체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홍 교수는 미국의 마케팅 연구 기업인 Comscore의 스마트TV 이용자 조사 결과를 인용해 “OTT 이용자들은 ‘영화’와 ‘드라마’ 등 픽션 장르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비해, Linear TV(실시간 TV)는 ‘뉴스’, ‘스포츠’, ‘게임쇼’ 등 라이브 성격이 강한 장르에서 여전히 장점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며 “향후 OTT와 실시간 방송 간 최적화된 조합으로 시청 행태가 형성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를 크게 ▲공론장과 공감장으로서의 역할 ▲방송 콘텐츠 산업 내 제작기반 및 문화 보호 주체로서의 역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 역할 등으로 구분해 평가했다. 홍 교수는 “방송콘텐츠 수출은 수출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국가이미지 형성과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라며 “글로벌 OTT 등 해외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 시점에서 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갖는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악화시킬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사업 환경 분석 및 과제’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지상파 콘텐츠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 소장은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 등으로 오래 전부터 미국 사업자들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 온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법체계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사업자들의 부담과 한계가 크다”라고 진단하며 “방송광고의 네거티브 규제 도입 등 광고 규제 혁신 등을 포함해 미디어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토론에 참여한 임정수 서울여대 교수는 “지상파 방송의 책무를 공, 민영 방송사가 모두 떠안기 보다는 역할의 분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고, 이시훈 계명대 교수는 “지상파 방송 자체를 시청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소비되고 있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에서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OTT 플랫폼과 지상파 방송에 적용되고 있는 비대칭적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국내 방송 정책은 대부분 가치적 접근에만 매몰되어 강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라며 “방송 산업 변화에 맞추어 현상적 접근 구체화를 통해 정책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냈다. 또한 박성순 배재대 교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의 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상파 방송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각 방송사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명확히 하여 다양한 수익구조 창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석철 SBS 전문연구위원은 “당장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지상파가 콘텐츠 생산요소시장 등에서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크다. 당장 지상파가 위축되면 방송콘텐츠 제작 인력의 육성과 배출이 원활해지지 않아 방송산업 생태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전망하며 “지상파 방송의 자생력을 위한 전반적 규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