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3.0버전 아트컨셉 이미지.
원신 3.0버전 아트컨셉 이미지.

국내 게임업계가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사이 오히려 민심을 독식하며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중국게임 원신이다. 국내 게임업체에 실망하고 분노한 유저들이 트럭시위와 단체소송을 추진하는 것과 정 반대로 원신은 게임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고, 소과금에 집중하면서 역대급 매출을 올리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원신이 출시한 지 2년이 지난 게임인데 앞으로도 수년은 더 잘 나갈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국내 게임들이 초반 반짝하고 반년 정도가 지나면 사라지는 패턴이 아니다. 원신이 뽑기식 게임인데도 국내 게임들과 달리 욕을 먹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번째 이유: 소과금에 집중한 BM구조


첫번째 배경으로는 소과금에 집중한 BM구조를 꼽을 수 있다. 핵과금을 타겟으로 한 리니지식 게임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엔씨소프트가 만든 리니지 시리즈는 하드코어한 현질을 해줄 수 있는 국내 '린저씨'들을 타겟으로 한 게임이다. 리니지식 게임의 경우 한달에 수십만원 정도 현질해서는 랭커가 될 수 없다. 한달에 수백, 수천만원은 질러줘야 랭커가 된다. 

반면, 원신은 무과금으로도 플레이하는데 지장이 없고, 현질을 하더라도 소과금이면 충분하다. 원신을 만든 호요버스(전 미호요)는 전세계 유저들을 상대로 소과금을 유도해 내는데 성공했다. 

원신은 서브컬쳐 게임은 돈이 안된다는 인식을 깨뜨렸다. 서브컬쳐란 비주류, 하위문화를 의미한다. 서브컬쳐 게임이라고 하면 이른바 '덕질 게임'을 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정적 인식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서브컬쳐 게임은 그동안 마이너한 분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는 두터운 이용자층이 형성되면서 주류가 됐다. 서브컬쳐 게임을 주류로 만든 것도 사실상 원신이다. 

원신은 스토리와 이벤트를 통해 캐릭터에 유저들이 몰입하게 하고, 그 캐릭을 갖도록 소과금 현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또 해당 캐릭에 애정이 없더라도 성능이 좋은 캐릭터의 경우 뽑게 만들고, 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같은 캐릭터를 또 뽑아 돌파를 유도한다. 또 픽업 기간에 전용무기를 출시해 뽑기를 유도한다. 

캐릭을 뽑을 수 있는 것이 상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름 정도에 한번씩 있는 픽업에서만 해당 캐릭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서 그 순간이 지나면 복각의 경우가 아니면 영영 뽑지를 못한다. 뽑기 기간에 희소성을 부여하는 영리함은 많은 유저들이 접고 있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큰 계기가 되고 있다. 

뽑지 않아도 각종 컨텐츠를 즐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캐릭터 하나를 얻는데 30만원 정도의 소과금이면 충분하다. 만약 원신을 하는데 누적으로 수백만원을 썼다면 꽤 많은 과금을 한 경우다. 원신은 한명의 유저가 수천, 수억을 질러주는 게임은 아니지만 전세계 많은 유저들이 수십, 수백만원을 질러주는 게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신도 CD 한장을 7~8만원 주고 사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콘솔게임과 비교하면  매우 비싼 편이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이다. 소과금에 집중한 BM구조는 리니지식 악랄한 BM구조와 대조되며 원신을 혜자게임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원신이 과금으로 욕을 먹지 않는 이유다. 


두번째 이유: 게임에 진심인 호요버스


원신 제작사인 호요버스는 오타쿠들이 즐비한 회사로 통한다. 게임을 틀면 "기술 오타쿠가 세상을 구한다"는 로고가 게임사명 밑에 들어갈 정도다. 오타쿠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파묻혀 사는, 변태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말이다. 

호요버스는 여러 게임들을 같이 운영하고 있지만 특히 원신에 진심이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너무나 애정하는 것을 게임을 하는 유저라면 느낄 수 있다. 

원신이 단순히 퀄리티 좋은 덕질가능한 오픈월드라서 잘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저들이 가장 감탄하는 것은 6주마다 1회성 스토리 컨텐츠를 추가하는데 이것이 요즘엔 거의 풀 프라이스 콘솔겜 하나 분량이란 점이다. 

모바일게임이든, 온라인 MMORPG든 대부분이 억지로 플레이시간을 늘리기 위해 의미없는 노가다성 퀘스트나 지루한 일일퀘스트를 추가하기 일쑤이고, 대규모 업데이트는 수개월에 한번 할까말까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원신은 하루 피로도 소모와 일일 퀘스트는 10분 내에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순수한 스토리와 탐험컨텐츠만 계속 추가하며 2년간 운영해왔다. 

특히 2.8~3.1버전까지는 컨텐츠 분량이 너무 많아서 직장인들은 다 클리어하지도 못하고 다음 버전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혼자하는 게임인데도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이게 노가다가 아닌 탐험이나 개성넘치는 퀘스트여서 즐겁다. 물론 매일 원신 속에 사는 하드코어 유저들은 할게 없다고 징징대지만 6주면 나오는 대형 업데이트로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는 할게 넘쳐난다. 

한번 풀고 버릴 컨텐츠를 이렇게 정성들여서 꾸준히, 많이 만들어주는 게임회사는 호요버스를 제외하고는 본적이 없다. 다른 게임사들도 덕질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 기술력 자체는 충분히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년동안 6주마다 이렇게 성실하게 업데이트를 해주는 회사는 매우 드물다. 이런 대형 업데이트 때 수반되는 이벤트들을 놓치면 손해다. 이 점은 원신을 떠난 유저들도 계속 돌아오게 만든다. 경쟁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쉬었다 복귀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점도 장점이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스토리나 중요 이벤트들을 풀더빙 해 놓은 것만 봐도 원신에 대한 게임사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게임들처럼 초반에만 더빙을 입히고 버리는 수준이 아니다. 최근에 나온 풀신 캐릭터인 '나히다'의 경우 놀라운 기믹을 넣어 유저들을 감동시켰다. 수메르의 수많은 NPC들에게 나히다 원소스킬을 사용하면 속마음이 나오는데 이것마저 풀더빙이 되어 있다. 나히다란 캐릭터를 갖고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속마음인데 캐릭터 하나를 위해 풀더빙을 했다. 과연 한국 게임사들 중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원신 애니 컨셉 PV 유튜브 캡쳐.

6주만의 대형 업데이트와 풀더빙, 여러 오프라인 행사 등은 호요버스가 원신으로 돈을 벌면 게임에 그대로 재투자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또 놀라운 사실이 알려졌는데 바로 원신의 애니매이션화다. 지난 9월 호요버스는 일본 유명 애니제작 회사인 유포터블(ufotable)과 협업해 장기 프로젝트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컨셉 PV가 공개되자 유저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안그래도 원신의 애니화를 애타게 기다려온 유저들이 수도 없이 많은 터였다. 그것도 귀멸의 칼날, 페이트 등을 애니로 만든 유포터블이라니 기대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당연히 원신의 애니화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무려 2년이 지난 게임의 애니화를 결정한 것은 게임에 진심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원신 애니화는 원신을 더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호요버스의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현재 바람, 바위, 번개, 풀의 나라가 공개됐고, 아직 불, 물, 얼음 나라가 공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떡밥들을 회수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향후 수년간 더 잘나갈 수 있는, 어쩌면 세계 1위 매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흥행 장기화의 발판이 이미 마련됐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는가?


다시 한국 게임 얘기로 돌아와 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원신이 이렇게 세계에서 잘나가는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할 때 한국 게임사들은 뭘 했느냐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중국 시장 60%를 장악했던 한국 게임사들이지만 지금은 세계는 커녕 중국시장에도 통하질 않는다. 펄어비스가 중국 판호를 뚫고 '검은사막 모바일'을 출시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 점이 이를 시사한다. 

호요버스처럼 자기 게임에 애정과 혼을 쏟는 한국게임이 매우 드물어졌다. 너도나도 리니지를 베껴대며 아류작을 내놓기에만 바쁘고 BM구조만 연구하는 동안 게임 개발력은 후퇴했다.처음 나올 때만 반짝하고 몇개월 지나면 기억 속에 사라지는 게임들이 너무도 많다. 게임 만들어 몇달간 쫙 뽑고 다른 게임 개발하러 가는 '한탕주의'가 한국 게임업계에 만연하다.

이 시간에도 한국 게임사들은 리니지를 베끼고 있지만, 중국 게임사들은 띵작이 된 원신을 베끼고 있다. 이 때문에 한 현직 한국 게임개발자는 "한국 게임사들은 이제 원신같은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원신을 중심으로 한 서브컬쳐 게임이 대히트를 치자 한국 게임사들도 덕질 게임을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 데스티니 차일드를 개발한 한국 게임사 시프트업이 '승리의 여신: 니케'라는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7일 한국, 미국, 일본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인기 게임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 게임이 원신처럼 장기흥행은 전작이었던 데스티니 차일드처럼 무리라고 본다. 스토리나 게임성 자체가 빈약하고, 엉덩이 출렁임에만 집중한 데다 10번 뽑기에 6만원에 달하는 하드코어한 과금 등 장기흥행작으로 가기엔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게임의 희망이었던 펄어비스였지만 기대를 한몸에 받은 도깨비나, 붉은사막의 출시일이 계속 연기되며 기대치를 스스로 낮추고 있다. 

게임썰전을 통해 원신 얘기를 두번이나 한 이유가 있다. 제발 한국 게임사들이 정신차리길 바래서다. 이렇게 가서는 한국이 게임 강국에서 게임 후진국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유저기만을 계속해도 질러주는 린저씨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돈 벌기에만 혈안이 되고, 가장 중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한국 게임사들을 개탄할 수밖에 없다.

유저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들면 오랫동안 사랑받고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원신은 증명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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