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주 4~4.5일제 도입을 속속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중후장대 산업 등 제조업종은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업종에서 주 4~4.5일제 확산 중...코로나19 계기로 업무 환경 변화 필요성 대두


현재 국내 기업들 중에는 주 4~4.5일제를 도입하고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4.5일제(주 40시간 근무)를 적용 중인 업체로는 CJ ENM, 토스, 그리티, (주)오픈, 여기어때, 리큅, 슈프리마, 금성출판사, 한국P&G, 수퍼트리 등이 있다.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올해부터 매주 금요일 4시간의 오전 업무가 종료되면 일괄적으로 PC가 꺼지고 자율적 외부활동으로 전환하는 ‘비아이 플러스(Break For Invention Plus)’를 시행하며 주 4.5일제에 돌입했다.

CJ는 4.5일제가 다른 회사들로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를 그룹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CJ(주), CJ제일제당 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직무 특성을 고려해 ‘일 또는 주 단위의 최소 근무시간’ 원칙만 지키면 요일별로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편성할 수 있는 선택근무제를 도입했다.

복합 핀테크회사 토스(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중순부터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토스인슈어런스 등 모든 계열사에 주 4.5일제를 도입, 운영 중이다. 금요일 업무 종료 시간이 오후 7시에서 3시로 단축됐다. 

라이프스타일 웨어 전문기업 그리티는 매주 금요일 반일 근무제를 도입해 4.5일 근무제도를 정착했다. 프리미엄 한우 외식 전문기업 ㈜오픈은 올해 6월부터 주 4.5일 근무제를 통해 매장 직원들의 개인 시간과 일상의 여유를 보장하고 있다. 

숙박 플랫폼 여기어때는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을 통해 주 4.5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라이프가전 기업 (주)리큅은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근무 후 퇴근하며 주 4.5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안업체인 슈프리마는 지난 4월부터 평일 8시간, 금요일 4시간 근무하며 주 4.5일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금성출판사는 올해 3월부터 금성 워라밸을 통해 매주 금요일 오전 4시간만 근무, 연차 소진·급여 차감 없이 나머지 시간은 자기계발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P&G는 최근 전 직원 240여 명을 대상으로 금요일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주 4.5일제를 도입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2시까지 주 40시간을 채운다.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 플레이댑 개발사인 수퍼트리는자유로운 연차사용과 오전 8~10시 자율출근제를 유지하면서 지난 4월1일부터 4.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4.5일에서 더 나아가 주 4일제(주 32시간 근무)를 도입한 기업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가장 먼저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은 에듀윌로 무려 2019년부터 도입해 운영 중이다.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은 6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이 휴무인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도 올해부터 주 32시간제를 채택했다. 카카오는 7월부터 완전하지는 않지만 격주 주 4일제를 도입했다. 미 밖에도 엔돌핀커넥트, 밀리의 서재 등도 온전한 주 4일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내 여러 기업들이 주 4~4.5일제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업무 환경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MZ세대가 경제계 전면에 올라오면서 이들을 잃지 않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까지 동반되는 점도 크다. 

또 생산성과 근무시간의 상관관계가 기술의 발전으로 그닥 상관이 없고, 오히려 쉬는 시간이 많을 수록 직원들이 집중해서 일하며 기업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들까지 나오면서 탄력이 붙고 있다. 국회에서도 요즘 틈 만나면 4.5일제 얘기 나오는 중이다. 지난 5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 4.5일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근무시간 단축'은 기업들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해결과제가 된 셈이다. 


제조업계는 주 4~4.5일 도입 현실적으로 어려워...업종 차이 인지하고 도입 논의돼야 


그러나 공장에서 노동시간이 길수록 생산성이 늘어나는 구조를 가진 제조업체들은 주 4~4.5일제의 확산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특히 철강,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중후장대 업종일 수록 현실적으로 근무시간 단축제 도입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주 4~4.5일제 도입이 가능은 하지만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제조업은 근무시간 단축으로 공장가동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손해가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제조업은 현장의 경우 지금도 주 5일 근무 기준에 주말 특근이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체 관계자 역시 "근무시간을 단축할 경우 정해져 있는 일정을 맞추느라 박터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주 4~4.5일제 도입을 추진하더라도 업종에 따른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중소기업들도 경영 여건상 주 4일제 도입이 불가하며 오히려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당 근무시간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존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에선 역부족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근로자들 역시 근무시간 제한으로 더 많은 임금을 가져갈 수 없어 불만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주 4~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양극화 우려도 제기된다. 주 4일제 등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우수인력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제조업, 중소기업 등에는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 4~4.5일 근무제 도입을 전체 산업으로 강제할 경우 자칫 생산성 하락에 따른 기업·국가경쟁력 하락으로 귀결될 것으로 우려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주 4~4.5일제 근무제도를 모든 산업에 동일하게 적용해서는 기업과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에서 4~4.5일제를 논의하더라도 IT·스타트업 기업과 제조업 간의 차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단축근무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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