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하에서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를 선호했던 대기업들이 정권이 바뀌자 속속 국내 대규모 투자를 확정짓고 있다. 24일 약속이나 한 듯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등 주요 대기업그룹이 국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네 곳의 국내 투자 규모만 480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에만 열심이다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다시 국내 성장동력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친 기업성향의 윤석열 정부에 재계가 힘실어주기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삼성·현대차·롯데·한화 등 네곳 국내에 480조원 투자...약속이나 한 듯 24일 동시 발표
우선 삼성은 24일 향후 5년간 국내에 3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국내 투자비였던 110조원 대비 40%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은 이번 발표에서 국내 어느 곳에 360조원을 투자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삼성은 평택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상태지만 이외의 지역에 설비투자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은 이같은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향후 5년간 신규로 8만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글로벌로 채용이 진행되겠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규모 인력 충원이 기대된다.
같은 날 현대차그룹도 국내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현대차, 기아, 모비스 등 3개사는 2025년까지 4년 동안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를 국내에 집중함으로써 ‘그룹 미래 사업 허브’로서 한국의 역할과 리더십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63조원 투자계획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우선 미래 성장의 핵심축인 전동화 및 친환경 사업 고도화를 위해 현대차, 기아, 모비스가 총 16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국내 순수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서는 PBV 전기차 전용공장 신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혼류 생산 시스템 점진적 구축, 기존 공장의 전기차 전용 라인 증설 등을 추진하고, 핵심 부품 및 선행기술, 고성능 전동화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시설 구축 등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이 밖에 로봇, 자율주행, AI 등 미래 신기술 부문에 8조9000억원을 투자하고,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상품성과 고객서비스 향상에 38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3사는 동시에 장비 및 설비 증설과 생산라인 효율화 등 안정적 생산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하고 생산과 판매의 경쟁력 우위를 유지한다. 기반시설 및 보완투자 등 시설투자도 병행할 방침이다.
롯데그룹도 향후 5년간 국내에 37조원 통큰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바이오·헬스케어와 모빌리티 분야,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친환경 사업을 비롯해 유통·화학·식품 같은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롯데는 신사업인 헬스 앤 웰니스 부문 육성을 위해 1조원을 들여 국내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모빌리티 부문에선 UAM(도심항공교통)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 중심으로 투자를 단행한다.
롯데케미칼은 수소·전지소재 사업에 1조6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수소충전소 사업, 배터리 전해액 등 사업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롯데화학에선 7조8000억원을 투자, 고부가 스페셜티 사업과 범용 석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설비 투자·생산 증설에 나선다. 친환경 리사이클링 사업도 확대한다.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관련 제품 100만톤을 생산하기로 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8조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 상암동과 인천 송도 같은 곳에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대규모 복합몰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 같은 핵심 지점의 리뉴얼도 실시한다.
롯데마트는 1조원을 투자, 제타플렉스·맥스·보틀벙커 같은 특화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코로나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관광 산업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호텔과 면세점 시설에도 2조 3000억원을 투자한다. 식품 사업에선 와인과 위스키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 대체육, 건강기능식품 같은 미래 먹거리와 신제품 개발에도 2조1000억원 가량을 쏟을 계획이다.
한화그룹도 5년간 국내에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조 원의 국내 투자는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의 3개 사업 분야에 집중될 예정이다.
태양광, 풍력 등의 에너지 분야에 약 4조2000억 원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태양광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최신 생산시설을 구축해 한국을 고효율의 태양광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 기지’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한 에너지 개발 사업영역 확대도 도모한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국제 환경에서 친환경 에너지 공급 기지로서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각오다.
9000억 원은 수소혼소 기술 상용화, 수전해 양산 설비 투자 등 탄소중립 사업 분야에 투자해 기후변화 위기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방산·우주항공 분야에는 2조6000억 원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한화그룹은 K-9 자주포 해외 시장 개척, 레드백 장갑차 신규 글로벌 시장 진출 등 K-방산 글로벌화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한국형 위성체 및 위성발사체, UAM 등의 분야에서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 관련 시장을 개척하는데 앞장선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국내 우주사업 생태계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우주산업 혁신을 선도하는 허브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런 국내 투자를 통해 한화그룹은 향후 5년간 총 2만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적 고용 확대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투자 소홀했다는 비판 극복 및 친기업 성향 윤석열 정부 밀어주기 해석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그룹들이 동시에 한국 투자를 발표한 배경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지목된다.
우선 해외에 투자하고 국내 투자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에 대한 극복 차원이다.
조선일보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추산한 결과 2018~2021년 외국인들이 국내에 투자한 규모는 58억8000만달러가 줄었고,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283억8000만달러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 등을 피해 해외에 유출된 비용이 342억6000만달러(43조41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약 21조원을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설립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현대차도 미국에 13조원을 투자해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배터리 3사 역시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투자를 줄줄이 확정지은 바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문재인 정권에서 한국보다 해외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특히 미국에 집중됐다. 대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는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올라타겠다는 경영적, 전략적 결정이었지만 국내 투자에는 등한시하면서 국내 일자리 창출해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대차는 24일 국내 투자를 발표하면서 "해외공장이 국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양사의 직원수는 ’04년 8만5470명에서 ’21년 10만7483명으로 26% 확대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해외 투자로 인한 비판을 피해가려는 맥락에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에 적극 화답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재인 정권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친 기업성향의 보수우파 정권이다. 후보시절부터 공약 자체가 친기업적인 성향이었다. 기업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민간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한편,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지원자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혀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 만찬에 이재용 부회장 등 국내 5대 그룹 총수와 재계 단체장을 초청하는 등 친기업 행보를 이어왔다. 21일에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에 10대그룹 총수가 초청받기도 했다.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데 대해 기업들이 국내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대기업들의 대규모 국내 투자에 또 다시 화답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기업 투자 촉진과 혁신 지원 등을 위한 법인세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법인세 인하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검토 결과에 따라서는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최고세율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인하 시에는 문재인 정부 첫해에 인상된 최고세율을 5년 만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식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밖에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노조활동을 억제하거나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키고, 상속세를 완화하는 등 조치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대환영할 만한 일들이다.
재계 관계자는 "친기업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동안 해외투자를 하거나 돈을 쌓아놓기만 했던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로 유턴하고 있다"며 "규제개혁과 노동유연성 강화, 일자리 창출, 투자지원 등 경제 성장동력 회복에 대한 재계의 기대가 높은 만큼 대기업들이 윤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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