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투쟁을 이유로 정상적 업무를 사실상 방해하고 있다는 연구소 직원의 제보가 나왔다. 르쌍쉐의 부진으로 갈수록 내수시장 독점현상이 강화되고, 작년 말 새롭게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강성이며, 사무직 노조위원장의 자진 퇴사 등으로 금속노조가 더욱 기고만장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대차 연구원 "생산직 기술자 협력받기 어려워...놀고 있는 기술직 놔두고 외부 업체에 돈 펑펑"


17일 직장인 익명게시판(블라인드)에는 현대차 연구원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글을 올렸다. 그는 "연구소는 새로 차 만들거나 테스트할 때 장비랑 차량 개조를 해야해서 기술자가 필요한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앉아서 투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대부분 연구원들이 울며불며 장비를 세팅해달라고 하면 (생산직 기술자 노조원이) 아침부터 일시킨다고 짜증내면서 커피나 마시러 갔다가 산책하고 와서는 점심시간 다됐는데 무슨 일이냐며 점심시간 한시간 전부터 먹으러 갈 준비하고 점심시간 되기도 전에 사라져서 식사하고와서 차 수리하는 리프트에 네트걸고 운동하다가 점심시간 끝나면 그제서 샤워하고 쌩쇼를 하다가 운동복 세탁하고 말려놓고서는 그제서야 연구원들 부탁한 업무 한시간 깔짝 하는 척 한다"고 적었다. 

또 "그리고 휴식시간이라고 커피마시러 가서 농땡이피우다 기어들어와서 주말에 특근해야 겠다고 하면서 특근도 못하는 연구원들 주말에 출근하라고 강요한다"며 "그래놓고 정년연장, 해고자 복직 외치면서 연구수당 3만원 요구해줄테니 연구원들도 출정식 나와서 시위하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놀고 있는 기술직 놔두고 외부 업체에다가 돈 펑펑 써가며 (장비 및 차량 개조 등을) 맡기는 중"이라며 "뭐 내돈 아닌데 그냥 쓰고 호갱님한테 청구하면 된다"고도 덧붙였다. 

남양연구소 조합원들의 출정식 참석을 촉구하는 노조 발행물. 연구직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미지=블리인드 캡쳐)
남양연구소 조합원들의 출정식 참석을 촉구하는 노조 발행물. 연구직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미지=블리인드 캡쳐)

이 글과 함께 올린 게시물은 금속노조의 2022년 단체교섭 승리를 위해 16일 열린 남양위원회 전 조합원 출정식에 참석하라는 내용의 노조 발행물이었다. 금속노조는 "2022년 단체교섭 출정식은 남양연구소 조합원들의 민심의 척도로 작용한다"며 "본관 사거리에 수많은 조합원 인파가 모인다면 남양위원회 집행부도 투쟁에 강한 명분을 얻게 된다. 남양연구소 조합원들의 '성난 민심'을 보여달라"며 출정식 참석을 촉구했다. 

해당 글은 다른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금속노조 있는 곳은 다 똑같다. 우리회사도 꼬라지 진짜 개판이다. 타 자동차 회사에서 우리 회사 조합보고 혀를 차더라", "쓰레기들 하는게 뭐냐...돈 벌기 쉬워", "현차 생산직들 심각하네", "금속노조 특징 일 안함. 일은 안하고 회사경영에 참여하고 싶음. 그리고 자기들은 임원급임", "쌍용처럼 되봐야 하는데 현기차는 절대 그럴 일이 없으니 영원하겠다". "진짜 월급 루팡 중에 갑인 듯" 등 연구원 업무를 방해하는 금속노조에 대한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다. 

현대차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오랜 기간 강성활동으로 현대차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는 남양연구소 연구원에 금속노조 생산직, 기술직 조합원들에게 업무 협조를 요구해도 불성실하게 응한다는 제보가 나온 것이다. 전기차 시대 전환,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한 차량 인도지연 등 안그래도 갈길 바쁜 현대차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성노조 득세 현대차그룹 독과점 심화 사무직 노조 실패 등 갈수록 '기고만장'


현대차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갈수록 기고만장해 지는 이유는 대체로 세가지가 지목된다. 

첫번째는 강성노조의 득세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12월 새 노조위원장으로 강성노조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뽑혔다. 12월 25일 기아 새 노동조합 지도부에 강성 성향의 홍진성 후보가 노조위원장에 당선됐고, 앞서 12월 7일 현대자동차 역시 노조위원장으로 강경파 안현호 후보를 뽑았다. 안현호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현대차 사내 현장조직인 '금속연대' 출신이다. 당시 현대차・기아 노조는 민주노총 내 최대세력인 만큼 현대차그룹의 노조리스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강성노조가 뽑히게 된 것은 현대차 직원들의 급여 관련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1987년 창립 후 27년 파업을 했던 현대차 노조는 2019년과 2020년, 2021년 3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3년간 이상수 집행부는 무분별한 파업 지양을 공약으로 거는 등 실리·중도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과거보다 노조의 투쟁이 약해지면서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연봉이 줄었다는 불만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현대차 7년차로 추정되는 한 직원이 지난 3일 현대차 장재훈 사장, 이동석 부사장에게 성과급 관련 불만 메일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3년간 비교적 협력적이었던 노사관계는 지난해 12월 현대차와 기아 노조위원장으로 강성후보들이 당선되면서 급변했다. 

현재 현대차 노사는 임금·단체협상(단협)을 진행 중이다. 올해 현대차 노조는 단체교섭에서의 '완전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요구(해고자 원직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등)에 대해 올해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10일 상견례를 갖고, 8일 뒤인 18일부터 2022년 임단협 교섭을 시작했다. 현대차 노조의 핵심 요구안은 ▶기본급 16만5200만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 순이익 30% 성과급 배분, ▶호봉제도 개선 및 임금피크제 폐지 ▶신규 인원 충원 및 정년연장 ▶고용안정 ▶해고자 원직복직 및 가압류 철회 등이다. 사측은 손배가압류, 정년연장, 해고자 원직복직 등 주요 안건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두번째는 현대차그룹의 국내 시장 독과점 현상 심화다. 

지난해 국산 브랜드 차량의 국내시장 판매 대수는 총 128만4656대였는데 이 중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56만7769대(40.2%), 53만4510대(37.8%)를 판매했다. 제네시스도 13만8756대(9.8%)를 팔았다. 국산차 브랜드 중 현대차그룹에서만 87.8%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의 2020년 내수시장 점유율은 83.1%였는데 지난해 4.7%포인트가 상승했다. 반면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차, 쉐보레 등 이른바 '르쌍쉐'는 지난해 12.2% 점유율에 그쳤다. 

내수시장에서의 강력한 지배력은 현대차와 기아 강성노조의 힘 역시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전히 르쌍쉐가 힘을 못쓰고 현대차그룹을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성노조가 파업 등으로 사측을 압박하는 것이 수월해진 상황이다. 

세번째는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의 실패와 사무직 노조위원장의 퇴사다. 현대자동차그룹 ‘MZ 사무직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이건우 노조위원장(현대케피코 연구원·28)은 지난 10일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4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기치로 현대차그룹의 ‘인재 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결성에 이어 현대차그룹에 사무직 노조가 생기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유일한 교섭단체인 기존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사측과 소통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활동의 구심점을 찾기 힘들었다. 교섭권을 따로 부여하는 ‘교섭단위 분리’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역시 적은 내부에 있었다. 사무직 노조는 시작부터 "기존 강성노조와의 차별화"부터 "생산직 위주 교섭 탈피"를 외쳤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MZ 노조 내부로 받아들인 기존 금속노조 출신 세력과의 갈등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독자 노선을 고집한 이 위원장은 금속노조 출신으로 민주노총 가입을 강하게 주장한 조직원들과 시종일관 부딪친 것으로 전해졌다. 

추진동력 상실에 내부 갈등까지 커지며 사무직 노조위원장이 퇴사하고, 현대차그룹의 사무직 노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생산직 금속노조 노조가 사무직 노조와의 경쟁에서 압승한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 

현대차 노조는 사측을 상대로 PE모듈, 전기차 배터리 등 전동화 핵심 부품의 자체 생산, 미래형 자동차 산업 국내공장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PE모듈은 모터, 인버터, 감속기 등을 통합한 것으로, 전기차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현재 현대모비스가 생산해 현대차·기아에 납품하고 있는데, 노조는 이를 자체 생산해 장기적으로 미래차 일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는 국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어떤 공장을 세울지 경영까지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1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자 국내 공장을 외면한다고 비판했고, 직후 국내 63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데 대해서도 “뜬구름 잡는 여론몰이식 투자 계획”이라고 반발했다. 최근 일어난  화물연대 1주일 파업으로 현대차 울산공장이 차 2000대 생산 차질을 빚었음에도 현대차 노조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한다며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했다. 

오는 21일에는 11차 단체교섭이 시작된다. 기고만장할 대로 기고만장해 진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조는 계속해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사측을 압박할 것이 확실하다. 그 과정에서 위 연구원 직원의 하소연처럼 업무 방해에 준하는 일탈행동을 계속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무직, 연구직들의  인력 유출까지 일어나고 있다. 내부 이슈를 정리해야 하는 현대차지만 너무도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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