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한 강력한 감독 의지를 드러내며 증권업계에 경영진 책임 강화를 압박했다. 올해 상반기 불완전판매 논란이 잇따른 가운데 증권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지된다. 금융위원회 해체와 금융소비자원 신설을 포함한 당국 개편안까지 발표되면서 증권사들의 부담이 한층 커지는 모습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8일 증권사 CEO들과 만나 금융투자사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원장은 "임직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없는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자 원칙"이라며 투자자 보호에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동안 증권업계에서 벌어진 각종 불완전판매 사태를 향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된다.
불완전판매 잇단 적발…대형사 줄줄이 제재
이찬진 원장의 강경한 메시지는 이번만이 아니다. 이 원장은 은행권 간담회에서도 "더 이상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 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며 업무 전반의 프로세스 점검을 당부했다.
앞서 증권업계에서는 ELS 불완전판매를 비롯해 사모펀드, 홈플러스 ABSTB(자산유동화 전단채) 등 각종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사례가 연이어 터졌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 사태에서는 투자자에게 투자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지점에서 판매를 강행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제재 현황을 살펴보면 증권업계의 위기감이 더욱 실감된다. 지난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불건전 영업 행위가 적발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10건) △KB증권(9건) △메리츠증권(7건) △미래에셋·하나증권(6건) △유안타·교보·유진투자증권(5건) △신한투자증권(4건) 등이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은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10건이 적발됐다. 올해 상반기에만 4건의 제재가 내려졌다. 제재 사유는 △사모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전자금융거래 안전성 확보 의무 위반 △투자일임업자의 불건전 영업행위 금지 위반 등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한국투자증권은 벨기에코어오피스 펀드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아직 남아 있다. 해당 펀드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 앞에서 한국투자증권까지 행진하며 한국투자증권에 피해 보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KB증권 역시 같은 기간 불건전 영업행위 9건이 적발됐다. 한국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올해 상반기 4건의 제재를 받았다.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설명 내용 확인 의무 위반과 투자일임업자의 불건전 영업행위 금지 위반 등이 제재 사유로 지목됐다.
CEO 책임론까지 부상…증권사 판매 기조 변화할까
증권업계는 금융당국의 강경 기조에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당국은 증권업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한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와 직원 교육, 상품 설계 단계부터의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원장은 "CEO가 내부 통제 최종 책임자로서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내부 통제 부서에 실질적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상품 설계, 판매, 운용 등 영업 전 과정에서 사전 예방적 투자자 보호 문화를 주도해달라"고 경영진 차원에서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 직접적인 CEO 개입 요구에 따라, 과거 현장 중심의 책임 추궁에서 벗어나 최고경영진에게 투자자 보호 책임을 묻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당국이 CEO 차원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증권업계의 금융상품 판매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일선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점 직원들의 판매 방향이 소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금융상품 판매는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부에서도 그에 맞춰 직원들에게 재교육할 것이고 직원 개개인도 그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증권업계 전반에서 내부통제 등 리스크 관리를 조이고 있어 가시적인 위축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업 자체가 본래 리스크가 큰 금융업"이라며 "지금도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분위기는 있겠으나 그로 인해 상품 판매 자체가 심하게 위축될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금융당국 구조 개편도 변수…긴장감 '팽팽'
여기에 금융당국 개편이라는 변수도 증권사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최근 당정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는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명칭을 바꾼 뒤 감독 기능에 집중한다. 산하에는 기존 금감원과 새로 신설되는 금융소비자원(금소원)이 편제된다. 금감원과 금소원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증권사 입장에선 신경 써야 할 감독 기관이 한층 늘어나는 셈이다.
강도 높은 감독 기조에 더해 감독 체계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증권업계는 당분간 긴장감이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 인사들이 교체되는 시점에 금융당국 구조 개편까지 겹쳐 전부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금감원장의 집중 요소들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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