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준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 대체 왜 12월이면 전 세계적으로 연주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 재미있게 봤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2023)이야기를 쓸지 필자 스스로도 엄청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마감 일자만 늘어졌지요.

필자로 돌이켜보면 원고의 속도가 썩 잘 나아가지 못하는 글들이 늘 있었습니다. 기억을 되살펴보면, 어렵게 썼던 글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작가로 내가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나조차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갈 길을 정확히 알면 절대 그렇게 늘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글쓰는 사람으로 이런 일이 없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일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보기도 했는데요. 크리스마스이브를 두어 시간 남겨둔 긴박한 시점에서 필자는 갈 길을 정해야겠습니다. 그러다 결국 올해 작가로, 필자에게 가장 기쁜 일이었던 사건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늘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 아니기에 또 적지 않은 시련들을 버틴 끝에 온 행운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도 언젠가 이런 행운이 찾아갈지 모른다고 조금 더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거든요!

2024 세종도서 교양부문 예술분야 추천도서에 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작 35종 중 유일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입니다!

필자는 지난 12월 18일 오후 5시 경 발표된 2024 세종도서 교양부문 예술분야 추천도서에 저서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잡학사전>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필자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필자의 이름과 책 제목 그리고 출판사의 이름을 보던 순간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습니다. 그만큼 기뻤습니다.

작가로 바랐던 일이고 또 너무 기쁜 일이니까요! 필자가 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찾아 읽어주시는 것도 무척 큰 행복이지만, 힘들게 쓴 책이 상 혹은 표창을 받은 일도 그에 견줄만한 즐거움이었거든요.

우선 세종도서 사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드리자면요. 한국출판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사업이고요. 사업 공고에 지원한 출판사의 책(매년 정해진 기간 동안 초판 출간된 책에 한함)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 위원단이 꼼꼼히 검토한 후, 추천도서로 선정합니다.

추천도서가 된 책들은 정가의 90%의 가격으로 정해진 예산만큼 일괄 납품하고요. 분야는 학술분야와 교양분야로 진행합니다. 이 제도는 출판사와 작가에게 현실적으로 정말 좋은 응원이 되고요. 한 마디로 이 사업은 "이 책은 잘 만든 책입니다!" 도장 꽝! 찍어주고, 책도 구입해주는 제도입니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겠죠.

참 필자에 책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쓴 추천의 평도 소개해드릴게요!

클래식을 소개하는 도서는 매우 많다. 그러나, 이 도서는 클래식 음악입문자들에게 시의적절한 언어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문헌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저서의 제목이 '잡학사전'이지만, 실제로 다루는 내용을 잡학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저자가 소개하는 이 '잡학'을 통해 클래식 음악 전통의 내면까지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도서 온라인 시스템 발췌

올해 세종도서 학술 363종, 교양 427종 등 총 790종을 발표했습니다. 교양 부문의 경우 9개 분과에 총 5503종이 접수되었고, 그 중 427종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필자의 저서는 교양부문 예술분야에 선정된 총 35종 중 32번째로 이름을 올렸고요(가나다 순).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책으로는 유일합니다!

이 책은 서양 음악사의 음악 외적 이야기를 담아 소개하려는 필자의 의도가 담긴 책입니다. 평소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 서양 음악사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필자의 목표가 가장 잘 드러난 책이에요. 집필할 때 청소년 독자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요.

우연히 얼마 전 필자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선배 특강 초청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강의를 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청소년들에게 많이 닿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필자는 두 차례의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신마취를 받고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던 수술이에요. 그래서 이 책의 마감 일정을 반 년 정도 늦출 수밖에 없었고요. 그 과정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출판사 측에 양해를 구했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쓴 원고들이 절반 이상입니다.

그때 필자가 느낀 여러 감정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상하고 속상했지요. 깊이 내려가는 슬픔과 서양 음악사의 음악 외적 이야기들을 찾아 따라가는 여정은 솔직히 정말 피하고 싶은 날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어쩌면 회복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써나간 원고들이 잘 썼다는 칭찬 도장을 받았으니, 요즘 필자의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필자는 새해에 마흔 셋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필자의 삶은 굉장히 평화로웠고 평범했으며 또 재미있었습니다. 1년에 수술을 두 번 받은 적은 지난해가 처음이었지만, 앞으로도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뭐 이제 다 괜찮을 것만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해나갈 것만 같은 마음도 듭니다. 한 해의 끝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마주한 후 다양한 생각들이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작곡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더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어떻게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음악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요?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작곡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더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어떻게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음악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요?

베토벤은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며 청력을 서서히 잃었습니다. 처음에 베토벤은 자신의 청력 이상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는데요.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웠을 테고요, 어찌할 바를 몰라서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베토벤을 음악의 성인(聖人)이라 부르는 까닭은 듣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음의 예술인 작곡을 계속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요?

베토벤은 어떤 어려움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귀머거리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최선의 노력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우리 삶에 접목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요. 그 중 베토벤의 이야기는 현재의 어려움에 괴로운 우리가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하다고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참 해마다 12월에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클래식 음악사의 전통입니다. 마치 생일에 미역국 끓이고, 동짓날에 팥죽 먹는 것처럼 혹은 새해에 떡국 먹는 것처럼요. 이렇게 기억하시면 좋겠네요! 물론 베토벤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아마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에 자신의 삶을 최선으로 살아냈던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보통 마지막 악장에 차용된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 내용이 주는 용기와 인류애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는 의견들이 있습니다만, 그 또한 후대의 해석입니다) 연주하는 이유는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달에 베토벤처럼 우리도 열심히 살아보자, 이겨내보자, 파이팅을 외쳐보자, 그런 희망의 노래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올해 부족한 필자의 생각과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새해에도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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