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게 하며, 상반된 답을 사이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미국인 지휘자의 역사 개척한 유대인 청년
지난 195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오늘날까지 뮤지컬계의 신화로 불리는 명작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멋진 음악과 함께 흐르는 이 작품의 음악은 미국을 대표하는 1세대 음악가 중 한 사람인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작곡했는데요.
당시 미국에서 '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명성과 사랑을 받았던 그의 본업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클래식 음악회의 지휘자입니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1세대 지휘자로 평생 맹활약을 펼쳤거든요.
또한 작곡가로 오페라, 발레, 뮤지컬, 영화 음악,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 협주곡, 미사곡, 합창, 피아노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고요. 몇 권의 책도 집필했고, 후배 음악가를 길러내던 음악 교육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의 활동 중 눈여겨볼 만 한 점은 당시 미국에서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어쩌면 행운을 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번스타인은 우연한 기회에 오늘날의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타 지휘를 하며 얼굴을 알렸고요. 세간의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그는 미국을 방문한 유럽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가 미국으로 투어 연주를 올 때는 늘 유럽의 지휘자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는데요. 미국인 지휘자에게 유럽의 콧대 높은 오케스트라들이 지휘봉을 넘긴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미국에서 살던 유럽 출신의 지휘자에게는 믿고 지휘를 맡기면서요.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유럽 오케스트라의 미국 투어 연주회의 지휘를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곧 미국에 엄청난 청년 지휘자가 있다는 소문은 유럽에 전해졌고요.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은 앞 다투어 번스타인에게 지휘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음악가들에게 인기있는 음악가가 된 것이지요. 그동안 그가 지휘자로 열심히 갈고 닦았던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현재 유투브 등에서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쉽게 검색해보실 수 있는데요. 지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상당히 카리스마가 넘치고 또 매력적이기에, 당시 그가 큰 사랑을 받았던 일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또한 그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초청, 일명 '청소년 음악회'를 열어 중계하는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는데요. 공연장에서의 실황 음악회가 아닌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누구나 접근하기에 편한 매체 속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소개했습니다.
1954년부터 약 35년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또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온 젊은 음악가들이 뉴욕, 미국에서의 데뷔를 했지요. 이 프로그램은 당시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클래식 음악회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또 이밖에도 그는 음악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무척 열정적인 음악 인생을 살아냈습니다.

아물지 못할 사랑의 상처
번스타인은 성공한 음악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음악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 그를 들여다보면 아픈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분명 그는 굴곡이 상당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결혼 이후에도 동성 연인들과 여러 스캔들을 몰고 다녔는데요.
모두 그의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의 아내와 세 자녀들에게 결코 영원히 아물지 못할 상처만 남긴 그의 사랑 이야기는 화려했던 음악 인생의 그림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해 겨울 개봉했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그의 음악 외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실화 기반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번스타인을 직접 만나는 듯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브래들리 쿠퍼가 직접 대본을 쓰고 주인공 번스타인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요.
번스타인의 지휘를 재현하기 위해서 쿠퍼는 수개월 동안 실제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호흡을 맞췄는데요. 영화 속에서 살아난 번스타인의 지휘는 실제 지휘자들이 봐도 완벽한 번스타인이다, 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무척 실감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흑백 필름에서 시작해서 오늘날의 컬러 필름으로 끝이 나는 독특한 구성도 매력적입니다. 감독으로 쿠퍼는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 "194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가는 동안 흑백 필름을 사용하고 싶었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흑백 필름을 통해 보는 젊은 번스타인 사랑과 컬러 화면으로 바뀌었을 때의 사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 영화를 다 본 후 느낄 수 있는 안타까움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다소 긴 시간이지만 베토벤, 말러, 그리고 번스타인이 직접 작곡한 여러 작품을 조금씩 들어볼 수 있기에 그렇게 지루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 같은 모습일 수 없습니다. 여러 시대를 지나는 동안 인류가 깨달아야 했던 점 중 하나인데요. 번스타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지, 고민 해봐도 좋을 작품입니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빛낸 3곡
1.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프롤로그
1954년 초연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번스타인이 모든 곡을 작곡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당시 번스타인의 활동을 느껴볼 수 있는 선율로 등장한다.
2. 레너드 번스타인 <치체스터 시편 : 시편 23>
이 작품은 영국 치체스터 성당 측이 번스타인에게 위촉해 완성되었다. 보통의 종교 음악적 느낌과 달리 이 작품은 당시 번스타인의 뮤지컬 작품을 듣는 듯한 재미가 녹아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실제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3. 레너드 번스타인 <미사> 중 단순한 노래
번스타인의 미사곡도 특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영화 속에서 번스타인이 미사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아픔과 기쁨들이 점점 작품의 완성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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