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 세 번째 항목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런 통제 조치는 한국 현대사의 익숙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1980~199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당시 수많은 출판인, 작가, 제작자, 서점인이 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운 출판의 역사가 있다.
이 가운데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1980~1990년대 군사정권 시절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출판의 민주화라는 목소리를 전하고자 나섰다. 지난 10일 출협 정문에서는 출판의 자유를 기념하며 '책을 지키는 사람들'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비롯해 당시 활동했던 출판인과 작가, 출판 유관 단체 등이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윤철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1980~1990년대 군사정권 시절 많은 출판인, 작가, 번역가, 서점인, 인쇄 제본 대표들이 희생과 고난을 겪었다"며 "나라 전체가 숨죽이고 있던 1980년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출판인들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이 일에 앞장섰던 단체는 아니었지만, 고통받은 출판인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은 출판계가 일찌감치 함께해야 했을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누군가의 선의로 지켜지지도 않는다"면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 진실의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듯이, 앞으로도 권력으로부터 나아가 편견과 차별, 폭력으로부터 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이번 제막식의 의의를 되새겼다.


이날 공개된 '책을 지키는 사람들' 조형물은 아이를 품듯 책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조형물을 제작한 이태호 조각가는 "출판인들의 희생과 사랑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어머니상"이라며 "자녀를 양육하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출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 온 출판인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제막식에서는 출판의 자유를 위해 힘써왔던 출판인들의 소회도 이어졌다.
민주화추진위원회에 초기부터 참가한 이건복 도서출판 동녘 대표는 "출판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우리뿐만 아니라 저작물을 인쇄했던 인쇄소와 서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제작했던 분들과 책을 팔아줬던 서점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인쇄소와 서점인들을 향한 감사를 표했다.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장석주 시인은 당시 청하출판사 대표로서 겪은 투옥과 재산 몰수를 회고하며 이를 "출판을 통해 얻은 자랑스러운 훈장"이라 회고했다.
이어 "'책을 지키는 사람들' 기념비 제작을 통해 훈장이 현실화됐고, 다른 동료 출판인들의 큰 희생과 싸움을 통해 오늘날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정도까지 격이 올라갔다"고 전했다.

고(故) 나병식 전 도서출판 풀빛 대표를 대신해 참석한 홍석 도서출판 풀빛 대표는 "밤잠을 설치고, 피해 다니며, 투옥을 겪은 선배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라며 "이번 조형물 제막식을 기회로 '출판의 민주와 자유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하지 않나'라는 자기반성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제막식에는 김철미 백산서당 대표, 신형식 전 녹두출판사 대표, 임승남 도서출판 돌베개 전 대표, 정지석 변호사, 홍사희 영신사 대표, 유대기 전 거름출판사 대표 등 출판계 인사들이 참석해 소회를 전하며 자리를 빛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출판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하여"를 외치며 출판 자유 수호의 의지를 다졌다. 그들이 40여년 전 지켜낸 투쟁은 오늘날 한국 출판 민주화의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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