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생보업계에 제판분리 바람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제판분리란 ‘제작’과 ‘판매’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사는 상품의 개발과 자산 운용에만 집중하고 전속설계사는 자회사 GA(법인보험대리점)로 이동시켜 판매에 집중, 이를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여러 생보사들이 제판분리에 나서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흥국생명은 내년 초 본격 운영을 목표로 지난 8일 금융감독원에 GA 설립을 위한 인가를 신청했다. 최근 보험업계 트렌드에 맞춰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GA는 전속설계사와 달리 자사 생명보험상품뿐 아니라 손해보험상품을 포함한 여러 보험사 상품의 판매가 가능해 영엽효율이 높다.

흥국생명이 전속설계사 1851명을 모두 옮겨 완전한 제판분리를 진행할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GA 설립이 제판분리로 이어질 것이란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앞서 지난해 3월 미래에셋생명이, 4월에는 한화생명이 제판분리를 진행했고 라이나생명도 자회사형 GA로 라이나금융서비스를 운영중이며 푸르덴셜생명도 KB라이프파트너스를 출범시키며 제판분리를 완료했다.

동양생명의 경우 올해 초 본사 TM 조직을 분리해 업계 첫 TM 판매자회사 ‘마이엔젤금융서비스’를 출범시켰고 신한라이프도 내년 초를 목표로 자회사인 ‘신한금융플러스’에 TM 조직을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속에 제판분리가 보험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의견과 ‘비겁한 변명’이라는 주장이 맞서며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생보업계는 장기간 지속된 수익성 저하와 비용관리 압력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통상 제판분리를 진행하면 보험사의 수익성은 올라간다. 인건비와 점포운영비 등 지출을 줄일 수 있고 GA에서 타사 상품 판매가 가능해져 이익이 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제판분리를 마친 미래에셋생명과 한화생명의 경우 두 기업의 올해 상반기 사업비 지출 총액은 7682억원이다. 제판분린 초기였던 전년 동기 8715억원과 비교해 사업비 지출액은 11.9%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각각 살펴보면 미래에셋생명의 사업비 지출액은 지난해 상반기 2385억원에서 올 상반기 1627억원으로 31% 줄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상반기 6357억원에서 올 상반기 6055억원으로 12% 감소했다.

사업비율 역시 개선됐다. 사업비율은 보험료수익에서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데 경영 효율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미래에셋생명의 사업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27.4% 수준이었는데 제판분리를 마친 올 상반기 19.4%까지 낮아졌고 한화생명의 사업비율도 지난해 상반기 13.5%에서 올 상반기 12.0%로 낮아지며 경영 효율성이 개선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산업 제판분리 논의 배경과 향후 과제’ 리포트에서 “장기간 지속된 수익성 저하로 비용관리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시장경쟁 심화, 빅테크기업의 금융업 진출 등이 제판분리 현상을 촉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보사의 입장에서 보면 장점이 많은 제판분리에 보험사의 비겁한 변명이라는 반대의 입장도 존재한다.

사무금융노조연맹은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의 무분별한 자회사 설립이 직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에서 이재진 사무금융노조연맹 위원장은 “보험사들의 제판분리는 보험 전문성 고도화와 경쟁력 제고라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전속설계사의 고용보험료 부담 회피와 금소법 시행에 따른 리스크 회피, 구조조정 등이 이유”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자회사 설립 인·허가를 무분별하게 내줄 게 아니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자격요건을 갖췄는지, 유동성 비율은 양호한지 점검하고, 자회사 설립 요청 시 고용승계를 요건으로 해 고용안정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제판분리가 가속화되면서 생보사의 전속설계사 수는 계속 감소세에 있다. 생명보험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만9496명이었던 생보사 전속설계사 수는 올해 6만2981명으로 2년 새 30% 감소했다.

설계사 판매비중이 해마다 감소하고 GA 판매비중은 그에 반에 계속 상승하는 등 전속설계사의 영업 경쟁력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제판분리를 통해 GA로 소속이 바뀐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런 소속 이동과정에서 노사의 갈등은 항상 존재한다. 실제로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해 제판분리 당시 설계사조직과 큰 마찰을 겪었다.

당시 설계사로 구성된 한화생명 노조는 "제판분리라는 가면을 쓰고 최근 보험사들이 앞을 다퉈 추진 중인 영업조직 아웃소싱을 저지할 것"이라며 "그 출발을 한화생명 물적분할 저지 투쟁으로 시작한다"고 밝히며 저지운동에 나섰다.

한화생명 노조는 “조합원의 타회사 전직은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고용안정대책 조항을 단체협약으로 보장받는다”며 “사측이 1400명에 이르는 영업조직 직원들은 분할돼 다른 회사가 된 GA형 자회사로의 전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며 제판분리가 영업인력을 자회사로 이관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비용을 회피하려는 얄팍한 속셈이라는 주장했다.

미래에셋생명 노조도 제판분리과정에서 노사가 진통을 겪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보장(3년)과 원격지 발령 최소화를 약속하며 고용안정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미래에셋생명 노조는 “협약 이후 사측이 코로나 19를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며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센터원빌딩 앞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장기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번 제판분리 여부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GA 인가신청을 했을 뿐 구체적인 사항은 확정된 것이 없다”며 “전속설계사 조직을 모두 이동시켜 별도 판매전문회사를 설립할지 전속 설계사 조직을 두고 자회사형 GA 형태로 출범할지 여부는 확정된게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