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흥국생명 본사 전경. 사진=흥국생명

흥국생명이 지난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을 연기했다. 중장기적으로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과 채권시장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 하지 않은 경우는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처음이다. 그 후 콜옵션 실시는 13년간 암묵적 약속으로 지켜져 왔기 때문에 이번 미실시로 투자자들과 신뢰가 깨지며 향후 국내 기업들의 외화 조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 1일 싱가포르거래소를 통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미행사한다고 밝혔다.

앞서 흥국생명은 2017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이달 9일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이었다. 흥국생명의 채권 금리는 5년이 지난 이달 9일 가산금리가 붙어 6.742%로 올라간다.

해외채권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 수요는 비교적 견조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정책과 금리 인상 장기화 전망 속에 국내 기업들도 발행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선순위채보다 시장 상황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아 흥국생명으로서는 시장 내 변동성이 확대됐을 때 발행에 나서는 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해 이번 발행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내년 3월경에 흥국생명의 5월 콜옵션 재시행 발표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이사회 결의를 통해 콜옵션을 다시 실시할 계획”이라며 “투자자들의 이탈을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콜옵션 재실시에 대한 일정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시행은 엄밀히 따지면 계약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암묵적 약속을 깬 흥국생명의 행보가 국내 기업들의 외화 조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첫 번째 매입권리 행사 가능일을 실질적 만기로 인식했던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며 “2009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 금융기관들은 모두 최초 매입권리 행사 가능일에 콜옵션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채권 가격 하락과 향후 투자 수요 위축이 전망된다”고 말했다.

선례로 우리은행은 지난 2009년 콜옵션을 미행사했다. 당시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은 한국의 외환 사정을 우려하며 대거 이탈했고 이에 우리은행이 후순위채를 스텝업 금리보다 높은 일반 채권으로 바꿔주면서 달래기에 나선 바 있다.

최 연구원은 “최근 레고랜드 이슈와 기업들의 기초여건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 기조였다”며 “이번 일로 투자 심리는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려가 지속되자 금융위원회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콜옵션 미행사로 문제 될 것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며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 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재부, 금감원, 흥국생명과 콜옵션 미행사에 따른 시장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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