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한국 수출 산업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이 25% 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되면서, 주요 수출 품목 전반으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상대국 제품에 자국산보다 낮은 관세를 매긴다고 판단할 경우, 그 차이만큼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이미 고율 관세가 적용된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출 품목에 추가 압력이 가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이번 조치로 25% 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됐다. 베트남(46%), 중국(34%), 대만(32%), 인도(26%)보다는 낮지만, 일본과 말레이시아(각 24%), 유럽연합(EU·20%)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이미 관세가 부과된 품목이나 향후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에는 상호관세를 추가로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반도체와 의약품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별도 관세 부과를 언급한바 있다.
한국은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대부분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지만, 이번 행정명령으로 이 같은 원칙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이미 고율의 관세가 부과된 자동차·철강 업계에 더해 주요 수출 품목들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산업계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완성차 및 자동차 부품 업계는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기존 25% 관세에 추가 상호관세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무역 환경 악화에 따른 부담은 불가피하다. 고율 관세가 완성차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미국 내 판매량 감소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관세 부담을 떠안을 경우 수익성 악화라는 또 다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자동차 시장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어, 향후 한국산 차량을 겨냥한 규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장벽의 결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는 한국에서 생산됐다"라며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한국 시장 진출을 방해하는 비관세 장벽이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현지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도 상호관세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흑연·니켈·코발트 등이 규제 품목에 포함될 경우, 원가 상승과 공급망 재편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이는 곧 배터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완성차 업계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원료인 흑연은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에 사용되는 활성음극재(AAM)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공급망 리스크가 이미 현실로 다가온 상태다.
이에 더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중국산 흑연 음극재에 대해 반덤핑·상계 관세 부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에 한 사태다. 이번 조사는 미국 활성음극재생산자협회(AAAMP)가 2023년 12월 제기한 청원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으로, 협회는 중국 흑연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춘 뒤 미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며 최대 920%의 고율 관세 부과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과 LG 계열사의 수출 전략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이 베트남(46%)과 인도(26%)에 생산된 제품에 고율 관세를 적용면서, 이들 국가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두 그룹의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은 현재 베트남 호찌민·박닌·타이응우옌 등에서 스마트폰, 네트워크 장비, TV,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 수출 물량의 상당수도 이곳에서 조달된다. 인도에서는 수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와 스리페룸부두르에 생산기지를 두고 스마트폰, 태블릿, 냉장고 등을 생산하고 있다.
LG 역시 베트남을 주요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 등이 베트남 내 7개 생산법인을 포함해 총 12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 인도에서는 LG전자가 노이다와 푸네 공장에서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을 생산하고 있다.
다만 가전제품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멕시코 등지에 별도의 생산 기지를 두고 미국향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관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관세 이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품목은 스마트폰·태블릿 등 IT 중심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과 LG전자는 여러 국가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만큼,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경우 관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생산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LG전자 관계자는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제품은 한 모델을 여러 지역에서 생산하는 '스윙 생산체제'나 생산지 조정 등을 통해 대응할 계획"이라며 "여러 이슈별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최적의 대응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 당시 제시한 패널에는 한국에 적용될 상호관세율이 25%로 표기됐지만, 이후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26%로 명시되며 혼선이 빚어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 측에 문의하는 등 진상 파악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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