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목적은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움과 평온함을 평생에 걸쳐 점진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1962년 글렌 굴드가 쓴 편지 중에서

지난 1977년 8월과 9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차례로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 올해로 약 47년째 쉼 없이 우주를 여행 중인 형제 탐사선은 지금까지 인류가 쏘아올린 우주 비행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떠난 최고령의 탐사선입니다.

우주의 역사를 밝히며 경이로운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 두 탐사선은 우주 탐사 임무와 함께 지구의 존재를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를 알릴 목적으로 제작한 일종의 타임캡슐, 골든 디스크 탑제로도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현재 형제 탐사선은 지구에서 233억㎞ 떨어진 곳을 여행 중입니다.

당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엄선한 내용들이 지구를 소개할 목적의 골든 디스크에 담았는데요. 번쩍이는 음반 모양을 한 골든디스크에는 55개국의 언어로 말한 인사와 지구를 나타내는 이미지 그리고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도 실렸습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호주 원주민 노래 <아침 별>,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중 '희생의 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중 1악장 등이 미지의 존재를 위해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선택되었고요.

특히 골든디스크에 실린 총 31곡의 음악 중 유일하게 피아니스트로 독주 음원을 올린 연주자가 있었으니, 바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년 9월 25일~1982년 10월 4일)입니다. 이는 당시 글렌 굴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진작가 돈 헌슈타인이 촬영한 글렌 굴드의 모습입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글렌 굴드는 글 보다 악보를 먼저 익힌 음악 신동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부러 나서서 아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지 않았고요.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던 그의 음악적 재능에 그의 부모는 헌신적으로 아들을 지원했습니다.

음악을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분명 글렌 굴드는 남다른 음악적 성장을 이뤄나갔고요. 그는 10세에 토론도 왕립 음악원에 입학, 작곡과 음악 이론 그리고 피아노를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이후 15세에 캐나다에서 공식 데뷔를 했고, 반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가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간에 그는 대중 연주회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왔고요. 심지어 캐나다 정부는 글렌 굴드를 캐나다의 큰 위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가 쓰던 피아노인 CD318과 그가 연주 때마다 사용하던 등받이 의자, 그가 메모한 작은 종이 한 장까지 박물관에 소장할 정도로요.

1955년 청년 굴드는 캐나다를 떠나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차례로 데뷔했습니다. 20세기의 스타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쌓았던 그는 바흐의 <파르티타 G장조> 베베른의 변주곡집 등 평범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선보이기 일쑤였는데요. 그가 남긴 앨범 중 가장 유명한 음반 두 장은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입니다.

1956년의 데뷔 앨범, 25년 후인 1981년 유작 앨범으로 총 두 차례나 녹음을 할 정도로 아낀 바흐의 작품입니다. 평소 글렌 굴드는 무인도에 혼자 남아도, 바흐만 연주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바흐를 존경했습니다. 데뷔 앨범의 경우 당시 판매 180만장의 기록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이토록 그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여러 사연들이 있습니다. 비단 한 세기를 뒤흔든 피아니스트였다는 이유 뿐만은 아닐겁니다. 종종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작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그가 남긴 글, 편지, 인터뷰 등은 상당히 섬세합니다.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화려하며 수사적인 표현을 즐겼습니다. 1962년 그가 쓴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술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으키는 내부적인 연소가 만든 것이라고요. 공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예술의 목적은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움과 평온함을 평생에 걸쳐 점진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을 통해 우리는 라디오나 오디오 등의 기술을 통해 빠르고 적절하게 음악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이 만든 미학적 자아 애착 요소를 감상할 수도 있고요. 나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예술을 경험하는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 숙고하며 자신의 예술적인 영역을 만들어가는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Partita for Glenn Gould』(2010) 중 일부 발췌

같은 맥락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피아노를 친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참 그는 등받이가 있는 낡은 의자에 기대앉아 연주하는 걸 즐겼는데요. 이 의자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4인치씩 기존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 개조한 접이식 의자인데요.

표준 피아노용 의자보다 6인치 낮은 높이였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디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또 그는 오른쪽 다리 위로 왼쪽 다리를 올려 꼰 채 페달을 밟는 다소 예의바르지 못한 연주 자세로도 유명했습니다. 게다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허밍하길 즐겼는데요. 이러한 점도 그의 연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 누구보다 예술과 음악에 대해 철학적인 사고와 고집 있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글렌 굴드.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들은 "굴드의 예리한 재치, 예의 바른 태도, 마력, 허세 없는 소탈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다림질도 안 한 헐렁한 양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던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남긴 음악들이 한데 어우러져 글렌 굴드라는 세계를 이루어왔을겁니다.

얼마 전 미국 항공 우주국은 보이저 1호, 2호는 남은 60%의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우주 저 너머의 4만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미래의 누군가가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들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만약 누군가 우주에서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들었다면, 그들 또한 글렌 굴드의 마법에 빠졌겠지요?

 

| 참고 자료

『Partita for Glenn Gould』(2010) Georges Leroux 저,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펴냄캐나다도서관아카이브(www.collectionscanada.gc.ca), 스타인웨이앤선스(www.steinw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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