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도 나누어 보면 모두 하나같이 다른 면이 있다. 최고의 날을 평하는 기준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같다.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는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삶처럼 보이는 날들이 다른 이들과 겹치며 생기는 변화를 담은 영화다. 빔 벤더스와 타카사키 타쿠마가 각본을 맡았고, 야쿠쇼 코지가 주연 겸 제작총지휘를 맡았다. 이번 영화로 빔 벤더스 감독은 제76회 칸 영화제 에큐메니컬상, 야쿠쇼 코지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히라야마의 일상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싱크대에서 양치하고, 정해진 자리에 놓인 옷과 물건들을 챙겨 나서는 규칙과 반복의 삶이다. 쉬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샌드위치를 먹는 등, '아날로그'적인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는 그림자(影)다. 히라야마는 일하던 중 틈틈이 휴식을 취할 때 벽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며 쉰다. 그의 꿈은 언제나 흑백이고, 일렁이는 그림자가 겹쳐져 대체로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운 장면의 연속이다. 영화는 엔딩크레딧 직전 코모레비(木洩れ日, こもれび)의 뜻을 설명한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 단어로, 영화는 '찰나의 순간 동안에만 존재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빠른 전개 등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화면도 역동적이기보단 마주보는 듯 눈높이와 비슷한 시야가 주가 되며, 주인공 히라야마는 과묵하고 감정 표현도 크지 않다. 카세트 테이프와 같은 아날로그틱한 취미와 더해 언뜻 보면 히라야마가 매일 '틀에 박힌 삶'을 추구하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참 어린 직장 동료 '타카시'가 뺀질거리고 억지를 부리거나, 갑자기 찾아온 조카 '니코'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한 날들, 흠모하던 사람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도 히라야마에게는 완벽한 날이다.

그가 지금의 상황에 안주해 있거나 편안함만을 느끼기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감정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그의 취미를 통해 비춘다. 히라야마는 영화 속에서 총 3권의 책을 읽는데, 그중에는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의 소설 '야생 종려나무'(1939)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의 단편집 '11'이 포함된다.

'야생 종려나무'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대로 나오며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의 소설이다. 이 중 '야생 종려나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샬롯'이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불륜 상대와 사랑의 도피를 벌이는 내용이다. 히라야마가 서점에서 '11'을 고를 때 서점 주인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잘 묘사한다"고 말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스틸컷.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중간, 히라야마는 조카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그림자를 겹친 순간, 히라야마는 변화가 없다는 말을 부정하고 "겹치는 순간 더 진해진다"고 말한다. 히라야마의 말처럼 불안과 불편한 감정들마저도 '지금'에만 겪을 수 있다. 히라야마의 삶도 '야생 종려나무'의 구조와 겹친 그림자처럼, 다른 이들과 겹치고 얽히며 서로를 보완한다.

영화 말미,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르는 장면에서 특히 주제는 강하게 두드러진다. 히라야마의 출근길, 해가 뜨는 도시의 풍경 후 'It’s a new dawn/It’s a new day/It’s a new life for me/I’m feeling good'이라는 가사와 히라야마의 울 듯 말듯한 복잡한 표정이 길게 대비된다. 그에게 있어 삶은 코모레비처럼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영화 제목이 'Perfect Day'가 아닌 'Days'인 이유다.

'퍼펙트 데이즈'는 야쿠쇼 코지·에모토 토키오·나카노 아리사·아오이 야마다 등이 출연하며, 오는 7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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