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흥미를 갖고 꾸준히 소개하는 서양 음악가들의 이야기들은 편지와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1차 사료로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이 직접 쓴 편지, 일기 등 글인데요. 악보에 기록한 그들의 음악적 이야기는 이미 오랜 세월 인류가 함께 공유하고 감상해온 것이지만, 편지들 속 숨어있던 이야기들은 디지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역사가 아주 긴 편은 아니니까요.
유럽에서 2000년을 기점으로 역사적 사료들에 대한 대대적인 아카이빙 작업이 이뤄졌는데요. 물론 지금도 이뤄지고 있고요.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에서 꽤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편지들을 인터넷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요즘이 참 좋기도 합니다. 그 덕에 저도 이번 칼럼에서 슈베르트의 편지를 소개하게 되었으니까요.
슈베르트의 이름에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가곡의 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약 690여 곡의 가곡을 남겼거든요. 이 정도면 작곡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10세부터 약 20년간 1년 기준 약 34.5곡의 가곡을 만든 셈인데요. 뿐만 아니라 약 200여 곡의 합창곡을 포함해 미사곡, 9편의 교향곡, 기악기를 위한 독주곡, 실내악곡까지 작곡했으니 사실상 평생 작곡을 하며 살았다고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어린 시절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왕실소년합창단에서 5년 간 단원으로 활동했고요. 장학금을 받으며 음악 학교에 다녔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전문 음악가의 길 대신 교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음악가로 못 이룬 꿈을 하나 둘 선보였어요.
슈베르트가 작곡한 작품들을 친구들 앞에서 연주했고요. 그의 친구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 행복해했고요.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등 그의 친구들은 음악가로서의 삶을 계속 응원해줬고요. 당시 그와 친구들이 모여 음악을 나누던 모임을 슈베르티아데라고 불렀는데요.
번역하자면 슈베르트의 밤입니다. 이 모임은 점점 소문이 났고요. 슈베르트의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참석하기 시작했고요. 이렇게 슈베르트의 음악은 당시 빈을 넘어 독일까지 소문이 났고요. 어린 시절 슈베르트의 바람처럼 그는 악보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의 곁에서 그의 음악을 함께 들어주고 연주했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음악을 지지해주고 응원했던 슈베르티아데에서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분명 슈베르트는 더욱 더 음악가로 활동을 위해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친구들은 그가 미처 발표하지 못한 작품들이 알려지도록 노력했고요.
끝까지 슈베르트의 음악적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우정이겠지요. 필자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 중 하나는 친구라 생각하는데요. 아쉬운 일부터 기쁜 일까지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요.
끝으로 슈베르트가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썼던 편지를 덧붙입니다. 1818년 9월 8일 슈베르트가 쇼버, 슈파운, 마이어호퍼, 센, 슈트라인스베르크, 바이스, 바이들리히에게 쓴 편지인데요. 당시 슈베르트와 친구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상상이 갑니다. 편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끝까지 슈베르트의 곁에서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진짜 친구들입니다.
친애하는 쇼버, 슈파운, 마이호퍼, 젠, 슈트라인스베르크, 바이스, 바이들리히께
사랑하는 쇼버! 사랑하는 슈파운! 사랑하는 마이호퍼! 사랑하는 젠! 사랑하는 슈트라인스베르크! 사랑하는 바이스! 사랑하는 바이들리히!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마침 나는 소와 암소 경매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여러분의 묵직한 편지를 전달받았어. 편지를 뜯어보니, '쇼버'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지. 웃음을 터뜨리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편지를 읽었어. 마치 여러분을 직접 손에 쥔 듯한 느낌이었지. 이제 차근차근 답장을 할께.
(일부 생략)
만약 맥센이 우울하지 않다면 내 안부를 전해 줘. 그리고 곧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날 테니, 내 존경을 전해 줘. 이 편지가 네가 비엔나에 도착하기 전에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네가 여행하는 9월 초에야 이 편지를 받았거든. 그래도 나는 이 편지를 네게 다시 보내도록 할 거야.
그나저나, 밀더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네 말이 정말 기뻐.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지만, 트릴은 별로야.
모두에게 전하는 소식
우리 성은 아주 크지는 않지만 꽤 아담하게 지어졌어. 아름다운 정원이 둘러싸고 있고, 나는 관리인의 집에서 살고 있어. 꽤 조용하지만, 가끔 40마리의 거위가 동시에 꽥꽥거리는 바람에 내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야. 주변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이렇게 조화로운 백작의 하인들은 드물 거야.
다행히도 지금까지 요리사로부터 '구이'가 되지는 않았어. 그리고 내 솔직한 성격 덕분에 여기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너희가 나를 알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
(일부 생략)
친애하는 친구들!
슈파운: 네가 궁전을 짓고, 작은 궁정 고문관들이 그 안을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나를 진심으로 기쁘게 했어. 혹시 합창 사중창단을 말하는 거야? 가히 씨에게 내 안부를 전해 줘.
마이호퍼: 11월이 빨리 오기를 나도 너만큼 간절히 바라고 있어. 병을 그만 앓고, 적어도 약을 끊어 봐.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야.
젠: 위의 내용처럼 읽어 주게.
슈트라인스베르크: 이미 세상을 떠난 듯하니, 글을 쓸 필요 없음.
바이들리히: 자신의 이름을 코트 자락에 덧대어 꿰매도록.
바이스: 나를 기억해 주는 착한 사람.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친구들, 모두 건강히 지내고, 꼭 편지를 써 줘! 나는 너희 편지를 열 번씩 읽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즐거움이야.
우리 부모님께 내 안부를 전하고,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줘.
영원한 사랑과 함께,
너희의 충실한 친구
프란츠 슈베르트
| 참고 자료
도서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잡학사전>(정은주 저, 해더일 펴냄), 웹페이지 슈베르트-온라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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