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좋은 소식이 많았습니다.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의 청년 음악가들이 활약했고요. 지난 5월 26일에는 성악가 조수미가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최고 등급의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지요. 이 훈장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활동을 펼친 분들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슈발리에, 오피시에, 코망되르 총 3단계로 나뉘는데요.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수여받았습니다.

정명훈ⓒTakafumi Ueno.
정명훈ⓒTakafumi Ueno.

그리고 오늘 제가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일은 바로 지휘자 정명훈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인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 된 일입니다. 지난 5월 12일 라 스칼라 극장은 홈페이지 게시글을 통해서 2027년부터 정명훈이 라 스칼라의 새로운 음악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 274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음악 감독에 정명훈 지휘자가 활약하게 된 것이죠.

사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에 국적과 피부색을 가리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명훈 지휘자의 라 스칼라 예술 감독 선정을 통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역사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지구촌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기억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럽 클래식 음악 단체들이 수장을 선발할 때, 동양인 지휘자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니까요.

정명훈 지휘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거라 생각합니다만. 간단히 소개를 해드리자면요. 살아있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선택했는데요. 한식당을 운영하며 자녀들을 세계적인 음악가, 의사, 공연기획자 등으로 길렀습니다.

어린 정명훈은 한식당 주방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요리의 즐거움을 익혔다고 회고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그의 부모는 우리나라 1세대 클래식 음악가로 손꼽히는 첼리스트 정명화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정명훈까지 '정 트리오'를 길러낸 것으로도 유명했지요.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했던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공동 2위에 오르며 피아니스트로 행보를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지휘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지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4년 후인 197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임명되며 지휘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요.

1980년대부터 독일 자르브뤼켄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 객원지휘자, 파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 음악감독 등으로 국제적인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던 음악가입니다.

특히 정명훈 지휘자와 라 스칼라 극장과의 인연은 1989년부터 시작됐는데요. 지금까지 약 220회가 넘는 오페라, 음악회 지휘를 했거든요. 이 횟수는 역대 라 스칼라 음악 감독 다음으로 많고요. 그만큼 라 스칼라 극장이 정명훈 지휘자를 신뢰해왔다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KBS교향악단 계관 지휘자, 다음 달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 초대 예술감독과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어 조국에서의 활동에도 열심입니다. 그에 대한 화제성 기사를 읽던 필자는 우연히 흥미로운 책 한 권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정명훈의 요리법과 음악 인생 철학 이야기가 담긴 책 『정명훈의 Dinner for 8』입니다.

현재 절판된 상태라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주문을 했고요. 첫 장을 읽어봤습니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동안 몰랐던 정명훈이라는 음악가에 대해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고요. 또 무척 배가 고파지기도 했습니다. 요리책 속 음식 사진들과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저절로요.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운은 음악을 만난 것이다. 전쟁 직후인 1953년에 그것도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내가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형과 누나들이 모두 음악을 공부한 덕에(중략). 지휘를 하게 되면서 어둡고 고독한 음악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해갔다."

위 대목은 그의 요리책 서문에 나온 그의 이야기인데요. 독자 여러분들께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꼭 함께 전해드리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문 요리사가 아닌 아마추어 요리사 정명훈의 표현으로 '막요리' 레서피와 비법들이 생각보다 따라 하기에 쉬워 보이거든요!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는 와인 페어링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는데요. 음식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 따로 마시는 것은 과한 감이 있다 싶다고요. 어느 와인이든 음식과 어우러지면 둘의 시너지가 음식 맛을 더욱 좋게 해준다고요.

그말에 필자도 격하게 공감했거든요! 필자는 그의 식탁에 늘 놓여있다는 고추 올리브 오일을 만들었는데요. 마른 고추를 유리병에 담고 올리브오일을 동량으로 넣어두면 끝입니다. 그의 말처럼 종종 매콤함이 조금 부족할 때 뿌려 먹어보려 합니다! 무대 위에서는 전문 지휘자로 부엌에서는 아마추어 요리사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지구촌 음악계의 전설, 정명훈 지휘자의 라 스칼라 예술 감독 선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참고 도서『정명훈의 Dinner for 8』 정명훈 지음, 동아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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