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1월부터 이어진 공모주 광폭 현상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빠르게 냉각되면서 진정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업공개(IPO) 시장을 두고 '광기'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2023년 6월 수요예측 규제 중에서도 초일가점 제도가 공모가 가격기능을 망가뜨렸고, 상장 첫날 가격 제한 폭 변경으로 IPO 시장이 이상현상을 나타냈다는 평가다.
소위 공모주 '불패'가 꺾이고 상장사들이 몸값을 낮추는 현상이 나타나자 현업 종사자들은 오히려 가격기능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모주 최대 장점이 할인된 가격인데, 그동안 발행사, 주관사, 운용사들의 이해관계와 전략이 맞물리면서 오히려 적정 가치보다 할증된 가격으로 시장에 발행돼 시장 교란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승창 KB증권 ECM본부장(전무)은 지난 4일 뉴스저널리즘의 인터뷰에서 "발행사 입장에서도 발행 당시 가격보다 유통 가격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장사 오너나 프라이빗에쿼티(PE) 입장에서도 공모가나 상장 첫 날 주가가 상단을 치는 것보다 에쿼티 스토리를 통해 꾸준히 우상향하는 쪽이 이득이라는 의미다.
유 본부장은 ECM 담당을 맡기 전에는 리서치센터에 있었다. 그 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연금운용 본부장을 맡아 상품을 제공하는 '셀 사이드'와 투자자 입장인 '바이 사이드' 경력을 동시에 가졌다. '사자'와 '팔자' 영역을 모두 경험한 만큼 가격과 시장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다.
유 본부장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지난해 공모주 시장 과열 현상이 워낙 두드러졌던 탓이다. 지난해 스팩을 제외한 상장사 77개 중 무려 65개 IPO 기업이 공모 희망 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특히 상반기에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장 첫날 공모가의 4배까지 치솟는 '따따블' 기업들도 속출했다.
상초가가 속출한 배경으로는 초일가점 제도가 꼽힌다. 이 제도는 주관사가 수요예측 첫 날 접수한 기관에 가점을 부여해 물량을 더 제공하도록 한 장치다. 운용사들은 수요예측 첫 날 밴드 상단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주문을 넣고, 물량을 받으면 시초가에 개미들에게 터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 지난해 초에는 개인투자자들도 재미를 봤지만, 하반기 들어 상장 당일에도 공모가를 하회하는 종목들이 속출하면서 물린 투자자들도 많다.
상초가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 중 대부분은 주가가 공모가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상초가에서 시작한 65개 기업들 중 공모가를 웃도는 기업은 5일 기준 13개 뿐이다. 지난해 초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연속으로 '따따블'을 기록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모가 대비 주가가 82.65%까지 빠진 코스닥 종목과 74.64%까지 빠진 코스피 종목도 있다.
"IPO의 가장 큰 경쟁력은 할인인데 지난해에는 할인 기능이 완전히 훼손됐어요. 그렇게 상장한 기업들은 따따블을 기록했죠. 회사는 그대로인데 어떻게 주가가 하루에 400%씩 올라가나 싶은 말이 안되는 시장이었습니다."
공모가는 주관사가 발행사의 적정 가치를 산정하면, 거기에 20~30% 할인을 적용해 희망 밴드를 잡는다. 여기에 기관들로부터 가격과 물량 주문을 받아 공모가를 정하는 방식이다. 기관 주문이 상단 초과에 쏠리면 발행사는 일부러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다. 증권사로서는 고객인 발행사에게 가격을 낮추자고 설득하기 쉽지 않다.
얼어붙었던 공모주 시장은 최근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LG CNS나 SGI서울보증 등 빅딜은 아직 미지근한 반응이 나오지만, 위너스, 엘케이켐 등 중소형 딜에서 상장 당일 주가 흐름이 400%, 180%를 기록하는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유통·공모 물량 등 딜 구조와 가격 메리트에 따라 옥석가리기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중소형주 반응이 좋으면 수개월 후 다시 밴드를 초과하는 가격이 나오면서 거품이 나올 수 있죠.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최근 IPO 제도를 손보는 과정에서 초일가점 제도를 축소조정하고 의무보유확약(락업)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유통물량 감소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가장 적절한 가격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가격기능을 되살리기 위해서 주관사와 발행사, 수요예측 참여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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