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지혜 기자.
사진=박지혜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증권업계에 모험자본 공급으로 혁신 성장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했다. 종합금융투자회사를 비롯한 초대형 IB(투자은행)들이 막중한 과제를 부여받으면서 향후 행보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이 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CEO들을 만나 그간 증권업의 역할과 성과를 돌아보면서 미래 발전 방향과 성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투자자 신뢰에 기반해 증권업 미래 성장을 이끌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이 원장이 강조한 것은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역할이다. 

이 원장은 증권사가 단기 수익에 치중해 온 관행을 벗어나 적극적인 모험자본 공급으로 혁신 성장을 견인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신사업 분야 발굴 △투자 방식 확대 △장기적 관점의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등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을 적극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 원장은 "은행 산업이 안정적으로 물을 제공하는 견고한 댐이라면 증권업은 물길을 만들어 나가는 혁신의 격류가 돼야 한다"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선제적, 지속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면서 미래 산업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완화 움직임과 더불어 금융지주 산하 증권사들의 경우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지나치게 조이면서 모험자본 공급의 역할이 위축되는 면이 있다"며 "증권업계 특성에 맞는 범주 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증권사 CEO들은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한 초대형 IB의 역할 강화와 발행어음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부동산 금융과 대기업 대출에 치중한 증권업계 수익 구조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당국은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종투사와 발행어음 제도를 도입했다. 건전성이 우량한 증권사가 단기 어음을 발행해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당국의 정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초대형 IB로 도약한 증권사들의 벤처 투자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래에셋·한국투자·KB·NH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약 38조9000억원이다. 이들 증권사가 지난해 초부터 3분기 말까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4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 중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한 자금은 774억원으로 전체 조달 금액의 2%가 채 안 되는 비중이다.

금융당국은 종투사 제도 본연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 개편 의지를 드러내 왔다. 이 원장이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을 약속한 만큼 당국의 노력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10일 '2025년 업무계획'에서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한 종투사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종투사 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향후 제도 개편에 따라 당국이 의도한대로 발행어음 사업이 모험 자본 공급 목적에 충실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이와 함께 현재 발행어음 사업이 허가된 미래에셋·한국투자·KB·NH투자증권은 물론, 삼성증권을 비롯해 초대형 IB 인가 자격을 갖춘 증권사들의 진출 행보에도 시선이 쏠린다. 

삼성증권은 현재 초대형 IB임에도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다. 삼성증권은 최근 내부에서 발행어음 사업 진출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삼성증권 측 관계자는 "전담 업무 태스크포스가 꾸려진 게 아닌 회의체 수준에서 논의가 시작됐다"며 "향후 계획과 시기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하나·키움·메리츠·신한투자증권은 초대형 IB 인가 자격인 자기자본 4조원을 충족했다. 금융위원회의 종투사 제도 개편안이 발표되면 그에 맞춰 신청과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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