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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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파란만장한 곡선을 그렸다. 상반기 치솟던 투심과 달리 하반기 급격하게 내려앉아 한기가 감돌고 있다. 시장 부진에 정세 불안정성까지 겹치면서 내년 초 상장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분위기가 밝지 않은 모양새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장한 기업은 총 29개다. 이 중 27개 기업이 공모 희망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공모가를 확정하며 높은 수요예측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상장 당일 주가가 크게 상승하며 공모주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공모주 상장 당일 주가 상승률은 약 120%에 달했다. 2분기 역시 약 65% 상승률을 보이면서 인기를 입증했다.

높은 수익률에 단기 수익을 거두려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열기에 불이 붙었다. 의무보유확약(락업) 없이 최대한 높은 가격에 많은 물량을 주문하며 가격을 부풀렸다. 이에 상장 기업 가치를 매기는 '밸류에이션' 기능을 상실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반면 3분기에 들어서자 공모주 시장의 기류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노스페이스와 엑셀세라퓨틱스 등 상장 당일 공모가를 하회하는 종목이 나타나면서 '따따블', '공모주 불패' 등의 수식어가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3분기까지만 해도 기관투자자의 '단타' 전략은 여전히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앤에스미캐닉스, 유라클, 아이스크림미디어 등 다수 기업에 약 2000개 기관이 몰렸지만 락업 비율은 한 자릿수를 넘기지 못했다. 

한편 3분기를 지나며 공모주 시장의 과열 양상은 더욱 식어갔다. 지난 10월 더본코리아 등 23개 기업이 청약 일정을 발표했다. 공모주 수급이 대거 몰리면서 투자자들의 자금이 분산돼 자연히 각 공모주에 따르는 투자 열기가 덜해졌다고 해석된다. 

본격적으로 시장 부진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상장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 증시 부진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풀이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투자자의 자금이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공모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도 부진한 결과가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상장한 KB발해인프라는 일반청약에서 미달을 기록했다. 

이에 당초 상장 절차에 돌입했던 기업들도 증시 분위기를 고려해 일정을 미루거나 증권신고서를 철회했다. 시장 부진으로 '제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유다. 

IPO '대어'로 꼽혔던 케이뱅크와 SGI서울보증은 내년으로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 코스닥 상장을 노렸던 동방메디컬·미트박스글로벌·아이지넷 등도 상장을 철회했다. 

반면 내년으로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이미 옥석 가리기 국면을 넘어 급속히 냉각된 공모주 시장에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로 정세 불안정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증시 분위기가 단시간 안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미 대선 영향으로 투자자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대거 빠져나간 데다가 탄핵 정국 전망도 불확실해 국내 증시 복구는 더욱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내년으로 상장 일정을 미룬 기업들도 적절한 밸류에이션 평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서울보증보험과 케이뱅크는 내년 초 예심 승인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상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LG CNS와 DN솔루션즈는 예심을 통과하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IPO 시장에 정통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 부진은 상반기 지나친 과열의 반작용"이라며 "게다가 최근엔 정치 이슈로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등 악재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내년으로 상장을 미룬 기업들을 보면 공모 규모와 공모가를 상당히 하향 조정했다"며 "이런 과정으로 점차 정상적으로 수렴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시장 반등은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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