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보자.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전시 중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도서 박람회인 '볼로냐 아동 도서전'의 핵심 프로그램이 바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다. 1967년부터 시작해 작년에 제57회를 맞이했고, 매년 70여 개국, 3천 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공모전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3년도에 선정된 일러스트 작가 80명의 원화작품 약 400여 점이 전시된다. 제57회 공모전에는 4,345명의 아티스트가 참가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단 2%만이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상의 경우 35세 미만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수여된다. 특히 이번 원화전은 볼로냐 아동 도서전 6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다. 2023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작년 일본의 도쿄, 효고, 이시카와를 거쳐 국내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다채로운 80가지의 시선'이다. 일상의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을 80명의 일러스트 작가가 제안하는 다채로운 시선을 통해 보자는 의미다. 최신 일러스트의 트렌드를 엿보는 동시에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발견하는 축제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눠져 있는데 여행, 동물들, 연결, 일상이 주제다.
키워드만 봐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섹션 1에서 뼈를 좋아하는 개를 그린 알리레자 골두지안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정교한 컷아웃으로 작업한 사치에 사부의 <그날의 기억> 등으로 시작해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붉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테레자 시클로바의 <거인>이 원화에서 튀어나온 듯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동물의 세계나 가족 이야기,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지만 율리아 트베리타나의 <전쟁일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참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섹션의 의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각자 취향에 맞는 일러스트 작가와 원화를 찾는 것이 원화전의 진정한 묘미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발견은 성인의 고독하거나 무료한 일상을 깜찍한 동물들로 표현한 치에코 테라자와의 <일상>이었다.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상 2022 우승자 안드레스 로페스의 아름다운 작품도 만날 수 있다(그의 책 <끄로꼬>가 국내 출판되어 있다).
더불어 국내 그림책 출판사 25개사가 소속된 한국그림책출판협회와 함께하는 특별 섹션이 있는데, 추천 도서 및 볼로냐 아동 도서전의 라가치상 수상작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중에서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시네마 특별상을 수상한 <안녕하세요, 윌로 아저씨!>를 보고 단숨에 매료되었다. 자크 타티 감독의 전설적인 윌로 캐릭터를 다비드 메르베유가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윌로가 일으키는 환상적인 사건과 유머처럼 특별함을 전하는 원화와 그림책을 4월 21일까지 건대입구 CxC 아트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전종혁 칼럼니스트
이미지 (주)씨씨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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