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작가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제공: 리움미술관 사진: 홍철기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작가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제공: 리움미술관 사진: 홍철기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1964년생)와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2019년 말, 도쿄 와타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보러 갔다. 전시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전시 포스터를 멋지게 장식한 '스노우맨'이라는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어디 전시되어 있는지 질문했더니 "녹았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다! 진짜 얼음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녹아 사라지는 작품이었다. 흔적도 없는 텅 빈 자리만 보고 돌아왔다. 동심을 짓밟힌 아이처럼 시간의 흐름(존재의 유한성)이 너무 야속했다. 그 후 2022년 4월,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국내 개관전으로 파레노의 이 열렸고 이번에는 개관 첫날에 방문해 눈사람과 만났다. 잃어버린 친구와 재회한 것처럼 더없이 기뻤다.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이번 전시 <필립 파레노: 보이스>에서도 눈사람(<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과 만날 수 있다. 작은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격자 받침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1, ⓒPhilippe Parreno 제공: 리움미술관 촬영: 이현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1, ⓒPhilippe Parreno 제공: 리움미술관 촬영: 이현준

필립 파레노의 전시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두 명의 건축가, 장 누벨과 렘 콜하스가 빚어낸 리움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장 누벨이 설계한 뮤지엄2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M2(지하 1층)로 입장하면 주황빛 전시장에서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여름 없는 한 해>)나 자유롭게 유영하는 다양한 물고기들(풍선)의 모습(<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장의 박스 공간(3곳)에 빛을 발산하며 움직이는 조명등을 설치하거나 미술관 외부 정원(썬큰 가든)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는 식으로 작품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물고기들이 공간을 마음껏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작품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류(상호작용)하고 있다. 1층에는 피에르 위그와 협업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여주는 <안리: 유령이 아닌, 그저 껍데기>와 작품에서 파생된 벽지 포스터, 섬유 유리 소재의 벤치와 유리 조명 유닛인 <루미나리에>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1층에서 지하 1층의 전시작품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의 숨겨진 매력인데 주황빛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이 절묘했다.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2, ⓒPhilippe Parreno 제공: 리움미술관 촬영: 이현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2, ⓒPhilippe Parreno 제공: 리움미술관 촬영: 이현준

렘 콜하스가 설계한 아동교육문화센터의 블랙박스에선 3편의 영상이 상영 중이다. 꼭 관람해야 하는 작품은 2020년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 촬영한 <귀머거리의 집>(4K필름, 38분)이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한때 머물던 집을 3차원으로 재구성해 검은 회화(14점의 벽화)를 벽면에 부착해 놓고 고해상 카메라로 촬영했다. 벽화 표면에 반사된 빛과 음향을 재현한 영상은 마치 유령과 조우하듯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그라운드 갤러리로 내려가면 콜하스의 공간을 활용한 방법에 감탄하게 된다. 전시장 벽면 곳곳에 무선 DMX 컨트롤러를 활용한 LED 조명(<깜빡이는 불빛 56개>)을 설치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전시장의 기둥 주위에 극장 입구의 화려한 불빛 차양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차양> 연작을 설치했고, 천장 위에는 거대한 말풍선들이 구름처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더불어 공간 여기저기에서 공명하는 소리(<∂A>)가 있는데, 인공지능이 도시의 소음 데이터와 배두나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다. 이 놀라운 소리를 리움에서 7월 7일까지 들을 수 있다.

전종혁 칼럼니스트

차양 연작, 2016-2023,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홍철기
차양 연작, 2016-2023,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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