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낀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먹구름 낀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올해 증권가에서는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부통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부 증권사들은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내부감사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책임 범위를 넓히겠다고 강조하면서 증권사에는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30일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증권사 금융사고는 14건으로 손실 규모는 668억원에 달한다. 2019~2022년까지 증권사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가 평균 7.8건(손실 규모가 143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불과 1년여 만에 2배 가까이 사고 건수가 늘어난 셈이다.


라덕연·영풍제지 사태부터 채권 돌려막기까지…끊이지 않는 내부통제 소홀 의혹


지난 4월에는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일어나면서 총 9개 종목이 급락했다. 당시 라덕연 일당은 차액결제거래(CFD)에서 증거금 40%만 있으면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주가를 조종했다.

여기에 지난 10월 검찰은 주가조작 세력이 지난해 10월부터 영풍제지 주식 3597만주가량을 시세조종해 2789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봤다.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키움증권에서는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특히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반대매매를 완료했지만 미수금이 4333억원이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영풍제지는 올해 주가가 900% 이상 폭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 여름부터 시세조종 의혹이 나왔던 종목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영풍제지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 반면 키움증권은 주식 거래가 정지된 이후에서야 이를 100%로 상향하면서 리스크 관리 능력에 의문부호를 남겼다.

메리츠증권에서는 IB본부 임직원들이 별도 법인(SPC)을 만들어 코스닥 기업 사전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취한 혐의가 적발됐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직접 투자하거나 가족과 친인척 명의로 투자해 거둔 차익이 수십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증권은 관련 임직원 6~7명을 권고사직 조치하면서 "직원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해명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PF 꺾기' 영업 행위와 특수관계인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하이투자증권이 자사의 부실채권(NPL)을 매수하는 조건으로 대출 약정을 해준다며 꺾기 영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홍 대표의 '국감 위증'이라는 판단에 무게를 두고 고발 등의 방침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미래에셋증권은 라임 특혜성 환매 여부로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고 대출 계약서를 위조한 직원을 자체적으로 적발하기도 했다.

증권사들의 내부통제 소홀 의혹은 연말까지 진행 중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증권사 9곳(교보·미래에셋·유진·키움·하나·한국투자·KB·NH·SK)을 대상으로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를 점검한 결과 다수의 위법사항·리스크 관리·내부통제상 문제점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 자금 시장 경색에 따른 랩·신탁 환매 중단 사태를 계기로 한 점검인데 지난 5월부터 9개 증권사 모두에서 예외 없이 위법 행위가 발견됐다.


'안전 운행' 방점 찍은 증권사들…전통 IB 및 WM 강화


내부통제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증권사들의 경영 전략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KB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급등주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 증권사가 특정 종목 증거금률을 100%로 설정하면 해당 종목은 외상거래인 미수거래가 불가능하다. 이는 곧 신용융자와 담보대출도 제한받는다는 뜻이다.

특히 증권사들은 내년까지 시장 불확실성이 지속할 것으로 보고 신사업 진출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둔 '안전 경영'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내부통제 리스크가 부각된 증권사들은 사업조직을 개편하거나 질책성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하이투자증권은 부동산금융 부문의 사업조직을 △프로젝트금융실 △구조화금융실 △부동산금융실 △투자금융실 등 4개실로 축소하고 이를 대표이사 직속으로 편제했다. 이번 인사로 하이투자증권 임원 7명이 물러난 가운데 부동산PF 사업을 주도한 김진영 투자금융총괄 사장을 포함한 부동산 관련 임원은 5명이 물러났다. 이를 두고 징계성 인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부동산금융·PF로 분리돼 있던 IB 3본부를 1사업본부 체제로 개편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자본시장 질서와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지 내부통제 업무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면서 "조금이라도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즉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IB부문 수익 약화가 불가피해지자 증권사들은 전통 IB 강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하나증권은 IB그룹 내 IB1부문과 IB2부문을 신설했다. BNK투자증권은 신명호 전 유안타증권 IB부문 대표를 차기 대표로 내정했다.

WM부문을 강화하는 곳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WM사업부를 총괄해 온 허선호 부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WM사업부에는 고객자산배분본부 조직을 배치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기존 WM본부를 WM부문으로 격상하고 산하에 연금본부와 리테일본부 등 2개 본부와 WM전략실, 플랫폼전략실 등 2개 실을 두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의 '내부통제' 강화 주문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증권사 감사와 준법감시인을 불러 간담회를 열고 내부통제 강화를 재차 요구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의 증권사 사고를 두고 "사내 정상적인 직업윤리나 통제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면서 "투자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증권사 내부통제 실효성 제고를 내년도 주요 업무계획으로 선정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업계와 수시로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개선 방안을 함께 모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