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 박애리 지투알 신임 부사장. 사진=LG 각사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 박애리 지투알 신임 부사장. 사진=LG 각사 

LG그룹에서 국내 4대 그룹 중 처음으로 사장급 ‘여성’ 전문경영인(CEO)이 나왔다. LG생활건강에 이정애 부사장이 사장으로, 지투알에 박애리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근 몇 년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세계적으로 여성인력 확충 바람이 불면서 우리나라도 해마다 여성임원 수는 늘어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와 기업이 제도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임원들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이 최근 진행한 내년도 임원 인사에서 이정애 사장과 박애리 부사장 등 두 명의 여성 CEO가 탄생했다. 그룹 공채로 들어온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은 화장품·생활용품 등 주요 사업군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2005년 LG애드에 부장으로 입사한 박애리 신임 부사장은 지투알 전무에서 승진하며 CEO에 선임됐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 다른 주요 그룹 계열사에서 여성 CEO가 나온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사장급 여성 CEO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LG그룹을 포함해 삼성, SK, 현대차 등 국내 주요 4대 그룹에서 오너일가를 제외한 ‘사장급 여성 전문경영인’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삼성, SK, 현대차 그룹이 내년도 임원 인사 발표를 앞둔 가운데 국내 기업에서 여풍은 해마다 거세지고 있지만 그 비율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서치에 따르면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처음으로 400명을 넘었다. 여성 임원은 총 403명으로 지난해(322명)보다 25.2%(81명) 늘었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72곳으로 파악됐다. 연도별 여성 임원 보유 기업 수도 늘었다. 지난 2011년(30곳), 2013년(33곳), 2015년(37곳), 2016년(40곳), 2018년(55곳), 2019년(56곳), 2020년(60곳), 2021년(65곳)으로 점차 확대됐다.

여성 임원이 가장 많은 기업은 심성전자(65명)로 지난해 10명이 늘었다. 이어 CJ제일제당(28명), 네이버(23명), 현대자동차(17명)가 뒤를 이었다.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CJ제일제당(24.6%)이었다.

이들 여성 임원 중 이사회 구성원으로 대표이사 직함까지 보유한 임원은 오너일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최수연 네이버 사장 2명이 전부다. 회장급 여성 경영자 중에서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유일하다. 부회장급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박현주·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 정도다.

이번 인사를 통해 LG그룹의 여성 임원 수도 늘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 29명에서 올해 64명으로 4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여풍 배경엔 ESG 경영의 강조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유니코써치는 오는 2025년 ESG 공시 의무화로 대기업이 다양성 강화 차원에서 여성 임원을 다수 발탁한 것이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 법인의 경우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등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성 임원 비율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100대 기업의 반기보고서 기준으로 여성 임원 비율은 5.6%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발표한 지난 1분기 보고서 기준 상위 매출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6.3%에 불과하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믹스가 여성 노동자 환경을 평가해 올해 3월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29국 가운데 꼴지를 기록했다. 선진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지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곳은 메타로 35.5%에 불과했다. 이어 애플(23.0%), 인텔(20.7%)이 다음을 차지했다. 이에 최근 유럽연합(EU)에선 2026년 6월부터 여성 이사를 40%까지 늘리도록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다.

허민숙 여성학자는 “LG그룹에서 가족이 아닌 여성 전문 경영인이 사장급 자리에 오른 것은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이번 인사가 이례적으로 홍보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에서 승진 사다리를 잘 탈 수 있도록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국가와 기업이 제도적 장치들을 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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