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가격이 또 다시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갑작스레 불어닥친 '철강 슈퍼사이클'로 철강재 가격이 대폭 올랐다가 9월 이후 주춤했었는데 해가 바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는 모양새다. 이는 자동차, 가전제품, 아파트 분양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공포'가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철강업계, 지난해에 이어 제품가격 쭉쭉 올린다...러-우 전쟁여파로 원료 가격 급등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 4월 18일부터 유통용 열연강판 가격을 톤당 5~7만원 인상했다. 유통용 일반재 후판 가격은 지난주에 톤당 7만원 인상했다. 현대제철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지난 2월부터 3개월 연속 제품 가격을 올려왔다. 이번 인상안까지 포함하면 포스코산 유통용 열연강판 공급가격은 톤당 127만원, 일반재 후판은 톤당 130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열연강판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원재료로 쓰는 용융아연도금강판, 컬러강판 등 냉연도금재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건자재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쓰이는 컬러강판의 경우 지난해에만 톤당 40만원 가량 올랐는데 2월에 이어 올해 중순에도 추가 가격인상이 예고됐다. 

자동차강판과 조선용 후판가격도 대폭 오를 조짐이다. 현재 포스코, 현대제철은 완성차업체들과 올 상반기 차강판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톤당 15~20만원 이상 오를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철강업계는 톤당 30만원, 완성차업계는 10만원 인상을 각각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톤당 15~20만원 인상으로 결정된다면 차강판 가격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130~140만원 내외로 훌쩍 오르게 된다. 

조선용 후판의 경우에도 철강사들과 조선사들이 올 상반기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철강사들은 톤당 10만원 이상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조선사들은 동결을 요구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용 후판가격은 톤당 60~70만원 대에서 110만원 이상으로 솟구쳤다. 조선용 후판가격은 두배 가까이 치솟았지만 이미 저가로 선박을 수주한 상황이어서 조선사들은 지난해 줄줄이 적자를 냈다. 조선3사는 후판가격 인상분에 대해 각각 수천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쌓았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수만원이라도 인상하는 선에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주가 회복되며 도크가 차고 있어 고객사 인도기일을 맞추려면 조선사들은 조선용 후판을 적기에 공급받아야 한다. 조선사들은 일본산 조선용 후판 수입을 늘리는 등 대응하고 있지만 물량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건설현장 필수 자재인 철근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7대 제강사들이 공급하는 철근 가격은 100만원 중반대로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90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들어 2월부터 3개월 연속 가격이 올랐다. 

현재의 철강가격 인상은 철광석, 원료탄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주 말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톤당 152.8달러, 동호주 항구(FOB) 기준 제철용 원료탄 가격은 톤당 490달러를 기록했다. 올 초 대비 각각 30달러, 130달러 상승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데 따른 영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철광석, 원료탄 등 각종 원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이를 철강제품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상반기 철강업계를 강타했던 '철강 슈퍼사이클'이 1년도 가지 못했던 것처럼 현재의 철강가격 상승이 지속적이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철강 슈퍼사이클의 배경이 호주와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나비효과였다면 이번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이고, 장기적으로 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자동차, 전자제품, 아파트 분양가 등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소비자들 '고통' 우려


철강가격 상승세가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현재의 철강가격 급등은 당장 수요산업인 자동차, 전자, 건설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로 인해 최종 수요자인 소비자들이 최종제품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지금도 자동차, 전자제품 가격 상승세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난, 소재가격 급등 등에 따른 제조 원가 상승으로 신차·중고차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다. 차강판 가격상승 역시 자동차가격 상승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요소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연간 약 700만 톤의 자동차 강판을 사용한다. 차강판 가격 급등을 자동차 가격에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미 완성차 업체들은 완전변경(풀체인지),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연식변경 모델 등 신형을 출시할 때 100만원 이상 가격을 올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인상폭이 더 커지게 생겼다. 

가전제품 가격 인상도 우려스럽다.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냉연도금제품, 컬러강판 등 가격이 대폭 뛰며 수익성 회복이 어려워지자 가전업계는 각종 신제품을 출시하며 제품가격을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월 22일 2022년형 TV 신제품을 출시하며 ‘더세리프 65인치’를 279만원에서 304만원으로 올리는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2월에는 맞춤형 가전 비스포크의 고급형인 ‘인피니트 라인’을 새롭게 출시했는데 일반 비스포크 대비 1.5~2배쯤 가격이 높게 출시됐다.

LG전자는 1월 24㎏ 용량의 ‘트롬 드럼세탁기’ 신제품을 190만3300원에 출시했다. 지난해 7월 내놓은 같은 용량의 트롬 드럼세탁기(159만8000원) 대비 30만원 비싸졌다. 

철근가격 급등은 분양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미 건설업계는 철근가격과 시멘트, 골재 등 건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30대 건설사 자재구매 담당자들로 구성된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는 지난달 현대제철 양재사옥 앞에서 철근값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건설 하도급 업체들은 건자재값이 폭등해 계약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공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공사비 증액으로 시공사와 조합이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실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경우가 그렇다. 시공사업단은 원자재값 급등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한데도 조합 측이 과거 체결한 계약까지 취소를 요구하자 결국 공사중단을 강행했다.

각종 건설현장에서 공사비가 줄줄이 오르며 분양가격 상승이 확실시 된다. 계약금이 오를 경우 시행사 입장에서는 일반분양에서 공사비를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분양가를 올릴 수 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해 지난 3월부터 분양가 상한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를 2.64% 인상했다. 

이런 상황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공포로 이어질 전망이다. |

업계 관계자는 "각종 원자재 가격이 모두 오르고 있고, 그 중에서도 철강재 가격 급등은 자동차, 가전 등 수요업체들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대 요소"라며 "결국 일반 소비자들이 자동차, 가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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