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투자증권.
사진=한국투자증권.

금융감독원이 태광산업의 EB(교환사채) 발행에 제동을 걸자 한국투자증권이 부리나케 태광산업 우군으로 나섰다. 실질적인 수익성은 높지 않음에도 향후 태광그룹과의 IB(기업금융) 관련 네트워크를 돈독히 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반면 태광산업의 EB 발행이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한국투자증권이 사실상 이를 도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태광산업이 EB 발행을 전면 중단했지만 논란의 여파는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 2일 교환사채 발행 절차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신청한 가처분 신청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EB 관련 절차를 전부 멈췄다. 

지난달 27일 태광산업은 이사회에서 지분율 24.41%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을 기초로 하는 3200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의결했다. 상법 개정과 새 정부의 자사주 관련 정책 변화를 의식해 빠르게 자사주를 처분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 결정이 명백한 주주이익 침해라며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발행 상대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아 정정 공시를 요구했다.

논란의 핵심은 EB 발행 구조에 있다. 자사주를 기반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면 교환권 행사 시 신규 유통 주식이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를 내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으로 직결된다.

특히 구체적인 발행 대상조차 밝히지 않은 채 결정을 밀어붙인 경우 주주 입장에선 '깜깜이 발행'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의 제동 이후 태광산업은 급하게 발행 상대방을 정해 공시를 정정했지만,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발행 절차를 모두 중단했다. 주주들의 눈초리는 이미 흉흉해진 분위기다.

이 가운데 발행 상대방으로 한국투자증권이 나서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국투자증권은 태광산업 EB 전량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교환사채는 일반적으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보다 발행 수수료가 낮고 표면이자율도 0%에 수렴해 증권사로서는 수익성이 낮은 상품이다. 이번 발행도 마찬가지로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이 모두 0%다. 약정 이자 없이 만기에 원금만 일시 상환하는 방식이다.

실질적인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투자증권은 태광그룹과의 향후 네트워크를 돈독히 하기 위해 우군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차원의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2년 연속 흥국화재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주관하면서 태광그룹 IB 딜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태광산업과 직접적인 트랙레코드는 없지만 양사 관계는 상당히 돈독한 것으로 감지된다. 

IB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태광이 다수 금융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광산업과 선행된 딜은 없더라도, 계열사 딜을 진행한 만큼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증권사와 기업 간 우호 관계는 단순히 딜 수임 여부나 트랙레코드 개수로만 결정되진 않는다"며 "태광 담당 RM(relationship manager)이 관계를 잘 쌓아뒀거나, 내부 네트워크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주가치 훼손 구조에도 인수 결정했나…한투증권 "결정된 것 아니었다"


반면 태광산업의 EB 발행이 주주가치 훼손과 직결되면서 한국투자증권도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상법 개정 전 자사주 기반 자금조달을 서두른 정황이 엿보이는 태광산업의 결정 자체가 '꼼수'라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그 파트너로 나선 한국투자증권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발행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구조를 뒷받침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이번 이슈가 자본시장법과 금산법과 어긋난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일 태광산업이 발행 절차 중단을 발표하기 전, 해당 논란으로 금감원에서 긴급 호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투자증권 내부에선 EB 인수와 관련한 수익성과 리스크 등을 검토하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 측에서 인수하겠다고 의사를 보였고 상호 합의가 됐기 때문에 태광산업이 공시에 한투증권 이름을 올린 게 아니냐"며 "결정할 당시 리스크를 몰랐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워낙 급하게 결정된 딜이라 결정 후에 내부 심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수 결정을 그렇게 얕게 진행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국투자증권은 EB 발행 자체가 결정된 사항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태광산업 공시에 나와있듯 내부 절차가 진행되던 중이었고 발행 사실이 결정난 게 아니었다"며 "금감원 호출 관련 사실은 확인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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