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밴드의 리허설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지하에서는 저녁 공연을 앞둔 밴드 '고고학'이 리허설 중이었다. 홍대 롤링홀의 일상이다.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 한복판, 올해로 인디 30주년과 함께 롤링홀 역시 30년의 음악을 담았다.
누군가는 그곳을 '인디신의 성지'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가는 길목의 빨간 지하 클럽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천성 대표에게 롤링홀은 하나의 공연장이 아닌, 그의 청춘이 녹은 공간이었다.
"롤링홀을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일이 직업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는 원래 더 많은 신인 뮤지션의 음악을 알리고 싶어 시작했거든요. 시간이 흘러도 초심은 변하면 안 되잖아요. 결국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진심'이에요."

지난 3일 홍대 롤링홀 사무실에서 만난 김천성 롤링홀 대표의 말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진심'이었다.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뮤지션들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니 그들도 저에게 진심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진심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모든 일은 진심이 없으면 오래 할 수 없어요. 만약 계산적으로만 일했다면 롤링홀을 30년 동안 이어올 수는 없었을 겁니다."
김 대표는 1995년 신촌 '롤링스톤즈'로 처음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롤링홀을 홍대에 연 2004년, 그에 따르면 당시 음악 소극장은 대학로에 몰려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호기로운 마음으로 '음악 하면 홍대', '소극장 하면 홍대'라는 인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20대에 음악은 '진심'이었고, 50대가 된 지금은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롤링홀은 기획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곳 중 유일하게 개인이 운영하는 클럽으로 꼽힌다. 대관 공연에 비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는 기획 공연이라는 방향을 선택했다.
"다른 공연장은 대관 공연을 위주로 많이 운영한다면 저희는 기획 공연이 더 많아요. 처음엔 힘들어 대관을 많이 잡았는데 어느 순간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전부터는 기획 공연을 더 많이 했어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뮤지션을 무대에 세우고 신인들을 발굴하는 재미가 커요."

기획 공연을 준비하려면 발굴과 선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롤링홀의 직원들은 모두 뮤지션 출신으로, 평소 신보를 듣고 아티스트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김 대표 또한 지금도 신보를 들으며, 무대를 찾아가고 좋은 팀을 발굴한다. 그렇게 롤링홀 무대에 오른 수많은 뮤지션이 어느새 이름을 알렸다.
"데이식스(DAY6)는 데뷔 초 이곳에서 공연했어요. 공연할 때마다 음악이 점점 변화하더라고요. 그렇게 성장하는 팀들이 하나둘 알려지고, 이 신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눈길을 주는 걸 보면서 느꼈어요. 결국 좋은 음악은 대중이 알아본다는 걸요. 이 흐름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다만 모든 순간이 순탄하진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은 롤링홀에도 위기였다. 한국공연장협회에 따르면 2021년 당시 서울 마포구에는 80여개의 라이브 클럽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폐업을 결정한 업장은 10여곳, 50곳 이상은 1년 가까이 운영을 중단했다. 문을 닫을까 고민했던 순간, 김 대표의 선택을 바꾼 건 뮤지션과 롤링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팬데믹 때 롤링홀을 지킨 건 사실 제가 아니에요. 누구한테 말 못 하고 혼자 버티고 있을 때 '세이브 아워 스테이지' 캠페인이 시작됐어요. 당시 감동도 컸지만, '아, 이제 롤링홀은 내 것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롤링홀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기서 공연했던 뮤지션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꼭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롤링홀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게, 제일 행복한 일입니다."

'세이브 아워 스테이지' 캠페인으로 롤링홀은 지켜졌지만, 김 대표는 롤링홀처럼 도움이 필요한 민간 공연장이 여전히 많다고 했다. 그는 민간이 운영하는 베뉴(공연장)와 뮤지션들에게 관심과 지원이 더해진다면 음악 시장이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K-POP의 성장 배경에는 밑에서 받쳐준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베뉴를 운영하는 사람들, 또 연주자들이죠. 이 사람들이 K-POP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한테 좀 더 관심을 두고 필요한 지원이 뒷받침되면 K-POP 시장도 더 단단하게, 자연스럽게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뭐든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 가잖아요."
김 대표는 작은 공연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무대에서 시작했던 뮤지션들이 언젠가 돌아와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장한 뒤에도 자신이 처음 섰던 무대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와주는 일이 다음 세대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라이브 클럽은 누군가에게는 첫 무대였고, 어떤 뮤지션에겐 고향 같은 곳이에요. 성공한 뮤지션이라면 초심을 기억하고, 한 번쯤은 고향의 무대에 다시 오르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규모가 작은 공연이 창피한 일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정말 멋있는 무대라고 느껴요. 지금 막 음악을 시작한 친구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락스타'를 꿈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 30년간 인디신의 변화를 지켜본 김 대표가 요즘 주목하는 밴드는 '스킵잭', '향', '캔트비블루'다. 그는 여전히 롤링홀에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며, 롤링홀이 뮤지션들의 '첫 번째 계단'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롤링홀을 계속 운영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인기는 누구에게나 영원하진 않잖아요. 그 순간 뮤지션들이 기댈 수 있는 무대, 그게 롤링홀이었으면 좋겠어요. 언제든 다시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첫 번째 계단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