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정치를 대표하는 말은 당쟁(黨爭)이다. 조금 더 쉬운 말로는 ‘당파싸움’이라고도 부른다. 지배층이 무리를 지어 서로 싸웠는데, 그 싸움이 조선 시대 내내 아주 심했고 또 오래도록 이어졌다는 뜻이다.
조선은 이(李)씨 성을 가진 왕들이 대를 이어 군림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신하들의 동의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나라이기도 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왕권과 신권(臣權 : 신하의 권한)의 균형과 상호견제'를 통해 정치를 운영해가도록 만들어진 나라였다.
하지만 신하들은 왕의 뜻에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고, 신하들 서로도 쉽게 뜻을 모으지 못했다.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왕과 신하들의 뜻이 맞았던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신하들의 뜻이 하나로 모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신하들, 즉 조정의 관리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 싸웠는데, 그것을 붕당(朋黨)이라고 불렀고, 붕당 사이의 싸움을 '당쟁(黨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 일본의 정세를 살펴보고 온 관리들이 서로 자신이 속한 붕당의 논리에 빠져 다투느라 일본의 침략 의도를 꿰뚫어보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전쟁에 제대로 대비할 기회를 잃었던 일마저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선의 역사를 훑어보면, 당쟁 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치거나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 일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시기동안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왕이었고, 그런 왕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대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신하들이 왕에게 맞서다가 죽거나 갇히거나 먼 곳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조선의 관리들 중에는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들 붕당 사이의 싸움도 종종 한 쪽이 떼죽음을 하거나 모두 관직에서 쫓겨날 때까지 계속되곤 했다. 그래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정치가들 중에는 형장이나 감옥에서 생을 마친 이들이 적지 않으며, 반대로 갇히거나 귀양을 다녀 온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아주 드물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이 망한 것은 당쟁이 치열하던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당쟁이 사라졌을 때였다. 붕당이 사라지고 그래서 당쟁이 사라졌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스린 것은 ‘세도가’라 불리던 권력자와 그들의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세도(世道)'란 원래 '세상의 도리'라는 뜻을 담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대표하고 다스리는 왕이 지켜야 할 뜻과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왕이 너무 나이가 어리거나 병이 들어 그 뜻을 미처 스스로 지켜낼 수 없을 때, 그 일을 대신하는 신하를 가리켜 ‘세도가’라고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되어 더 이상 자신에 반대하고 도전할 관리나 붕당, 혹은 강력한 권위의 왕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됐을 때 그 세도가들은 ‘세상의 도리’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의 이익만을 지키고 대표하는 사악한 독재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매천야록>이라는 당대의 유명한 사회비판서를 쓴 선비 황현 같은 이는 그래서 ‘세상’이라는 뜻의 ‘세(世)’자를 ‘힘(세력)’이라는 뜻의 ‘세(勢)’자로 바꾸어 ‘세도(勢道)’라고 비꼬았는데, 그 뒤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글자를 따라서 쓰기 시작했다. 세도가란 세상의 도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저 가진 힘을 마구 휘둘러 자신과 일족의 이익만을 챙기는 악인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붕당'이란 가치관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하지만 '가문'이란 그저 함께 얽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운명을 함께 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붕당의 싸움이란 서로 다른 생각이 맞서는 것이었고, 그 결과 늘 더 나은 생각이 이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명분 없는 주장이 용납되기는 어렵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힘 있는 가문이 모든 붕당을 누르고 만든 평화는 어떤 이견이나 감시와 견제도 용납되지 않는 힘의 지배질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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