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금융권 성과급 체계에 칼을 빼들면서 주요 금융지주 임원들의 성과급 잔치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업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권 보수 체계도 대대적인 전환기를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개별 임원의 보수를 주주총회 표결로 결정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 미국·영국 등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현재 국내 금융사들은 주주총회에서 임원단의 총보수만을 승인하고 있다.
금융사고 발생 시 임직원이 받은 성과급을 사후 환수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 중이다. 현재 일부 금융사들은 자율적으로 환수 규정을 두고 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의 한계가 지적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권이 지급한 성과급 1조원 가운데 환수된 금액은 9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이번 법제화로 실질적인 책임 경영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4대 금융지주 회장·은행장까지 10억원대 연봉…반기만에 11억원도
4대 금융지주 임원들의 보수 수준은 최근 몇 년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의 임원 성과급은 총 142억원으로 나타났다. 1인당 3억1521만원의 성과급을 챙긴 셈이다.
최근 5년간 국민은행 임원 성과급이 3억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 임원 성과급도 2023년 대비 2배 늘었다. 총 89억원으로 1인당 1억2040만원을 기록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 연봉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평균값이 16억9700만원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22억7400만원으로 가장 높은 연봉을 챙겼다. 급여 9억원과 상여금 13억7200만원을 수령했다. 같은 기간 양종희 KB금융 회장도 연봉 18억480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2023년) 대비 3억원 늘어난 규모로 급여 9억원과 상여금 9억4800만원을 받았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전년 대비 8억원 증가한 15억2200만원을 수령했다. 급여 8억5000만원과 상여금 6억7100만원을 더한 값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전년 대비 5억원 늘어난 11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급여 8억5000만원에 상여금 2억8400만원, 기타 근로소득 1000만원을 합한 규모다.
4대 은행장 보수도 성과급 중심으로 증가했다. 이재근 전 KB국민은행장이 26억2100만원, 이승열 전 하나은행장이 12억5200만원,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12억3500만원,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이 10억6800만원을 수령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올해 상반기 보수로 11억54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급여 4억900만원에 상여 7억4400만원이 더해졌다. 시중은행 임원중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다음으로 높은 보수다.
금융사고 증가에도 멈출 줄 모르는 성과급 …당국 '칼'에 꺾일까
반면 금융사고는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74건, 사고 금액은 1972억원으로 전년 대비 건수는 19.4%, 금액은 44.2% 늘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올해 8월까지 금융사 임원이 금융사고 관련 제재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
성과급은 늘고 사고는 증가했지만 책임을 묻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보수 체계 개편을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성과 지표(KPI)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보수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개편 의지를 드러냈다.
당국이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고액 성과급을 받아왔던 4대 금융지주 임원들의 성과급 향방에도 뚜렷한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주주총회에서 개별 임원 보수가 일일이 논의되면 주주들도 더 면밀히 임원 성과를 평가할 수 있어서다. 또 금융사고 발생 시 성과급 환수라는 강수를 둔 만큼 임원의 책임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겠지만 금융권 반발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일일이 성과급을 따지게 되면 각 임원들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어 "다소 강한 조치지만 은행권 보수 체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