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에 몰린 여천NCC(YNCC)를 둘러싸고 DL케미칼이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실제 지원 여부와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유상증자가 단순한 긴급 자금 투입이 아니라, DL의 재무 안정화와 한화와의 협상 주도권 확보를 겨냥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상증자에도 지원 불투명성 여전…이유는 '운영자금'

오는 21일까지 약 3100억 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도에 직면하는 YNCC는 연초부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DL그룹은 최근까지 워크아웃만이 해법이라며 자금 지원을 거부했고, 한화그룹과의 원료공급계약 갈등까지 겹쳐 정상화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지역사회와 산업계의 피해 우려가 커지자 DL은 결국 긴급 자금 투입 방침을 발표했다.

DL그룹은 지난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DL케미칼의 2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그러나 공시상 자금 용도는 '운영자금'으로 기재됐다. YNCC에 실제 자금을 투입하려면 DL케미칼 이사회 의결 이후 YNCC 이사회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다만 현재까지 한화와 구체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유상증자가 곧바로 자금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YNCC의 부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지만, 한편으론 집행 시점과 규모를 조절해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DL이 확보한 자금을 필요에 따라 그룹 내부 운영 안정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운영자금' 성격으로 설정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유연한 집행 구조는 향후 한화와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DL의 자금 투입 계획이 실제 지원으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한화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자금 지원 의사를 확고히 밝혔지만 DL은 아직 협의에 나서지 않았다"라며 "신속한 공동 지원 실행이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한화 "원료공급계약 이익 지키려 YNCC 지원 뒷전"

한화는 DL이 YNCC 자금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가 원료공급계약 문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부도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지원 대신 계약 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경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한화는 DL이 협상에서 입장이 관철되지 않자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화에 따르면 YNCC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케미칼에 판매한 에틸렌과 C4R1 등의 제품이 '시장가 대비 저가 공급'으로 판정돼 법인세 등 총 1006억원을 추징받았다. 이 가운데 96%가 DL 측에만 공급되는 C4R1 등 특정 품목에서 발생했다. 

국세청은 1999년 합작 설립 당시 체결된 장기 계약이 시세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해 DL이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판단했다. 해당 계약은 지난해 12월 종료됐지만,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는 임시 가격으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한화는 이러한 과세 결과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시가 기준의 신규 계약 체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DL은 한화가 자사 계열사에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 YNCC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지만, 한화는 "DL과 동일한 가격이고, 현재 시장 시세와도 일치한다"라고 반박했다.

한화는 입장문을 통해 "국세청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새롭게 계약이 체결돼야 하나, DL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으며, 시장가격 대비 저가로 20년 장기 계약을 주장하고 있다"라며 "이는 YNCC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며, 향후 20년간 YNCC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겠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한화는 시장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건으로 원료공급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향후 불공정한 거래조건으로 인한 부당한 이득을 방지해 과세처분, 불공정거래 조사 등으로 인한 사법 리스크를 방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양측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YNCC의 정상화가 지연될 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등 산업계 전반에까지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공급망의 불안정과 수급 차질 등 추가적인 파장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