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가 하나둘씩 막히고 있다. 기업들은 TRS(총수익스와프) 계약이 금융당국 규제와 충돌하면서 PRS(주가수익스와프) 형태로 우회해 자금을 조달해 왔으나 회계 해석에 따라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질 전망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SK온은 메리츠증권과 TRS 계약 형태의 자금 조달을 논의했지만, 협의 중 결렬돼 다른 조달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RS는 기업이 증권사에 자산의 수익을 넘기고 현금을 확보하는 파생상품 거래다. 지분 등 자산 보유로 발생하는 이자와 수익 등 총수익을 대가로 증권사는 약정 이자를 챙기는 구조다. 하지만 자산에 대한 배당권과 의결권 등의 권리는 기업에 유지된다. 외형상 지분을 처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그대로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TRS는 지분을 팔지 않고도 판 것처럼 보이는 회계상의 특성을 이용해 계열사간 순환 출자 구조 해소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그룹사간 채무보증 회피 등을 위해 활용돼 왔다. 의결권과 배당권을 그대로 보유하기 때문에 진성매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른바 '파킹딜' 논란이 꾸준히 점화되는 이유다.
SK온의 경우도 이런 파킹딜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SK온 관계자는 "TRS 형태가 논의됐던 건 맞지만 논의 과정에서 최종 제외됐다"고 선을 그었다.
SK온은 지난해 1조886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올해 1분기에도 163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1분기 말 기준 결손금은 4조3300억원에 달하면서 재무 상태가 악화했다. 업계는 SK온에 이렇다 할 담보 자산이 없다고 보고 있다. TRS 방식을 이용할 시 모기업 SK이노베이션과 SK㈜의 자산을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TRS 구조상 금융당국의 규제에 저촉할 위험이 존재한다.
또 그룹사에 관련 이슈가 발생했던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예측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TRS 방식으로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해 최근까지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적 분쟁을 벌였다. 공정위는 SK㈜가 내부 심의 없이 최 회장에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고 지적했지만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최 회장의 인수가 공개입찰을 통해 정당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TRS 등 파생상품을 계열사 간 채무보증 규제 회피를 위해 이용하는 행태를 유심히 지켜봐 왔다. 지난 4월에는 파생상품을 통한 채무보증 탈법행위의 판단 기준과 유형을 명확히 한 고시를 제정하기도 했다. 해당 고시는 1년 유예 기간을 갖고 내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IB(기업금융) 분야에 정통한 관계자는 "실제로 증권사들 사이에서도 TRS 계약이 당국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거래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최대한 당국 규제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TRS로 자금을 확보하는 기업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덧붙였다.
PRS마저 위기…회계 해석 변화로 기업 단기 자금 조달 '난항'?
이 같은 파킹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PRS 계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PRS 계약은 TRS에서 배당권, 의결권 등 권리 유지가 제외된 형태다. 기업이 지분을 매각하면 즉시 주식의 배당권, 의결권 등 법적 권리가 모두 이전돼 진성매각으로 인정된다. 오직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만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금융당국 규제에서 보다 자유롭다는 설명이다.
PRS는 실제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 사이에서 TRS의 대안으로 각광받아 왔다. 최근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 효성화학 등도 PRS 계약을 맺고 자회사 지분을 처분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PRS 역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분위기다. 회계법인들이 최근 PRS를 자산이 아닌 대출로 인식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하면서다. 실질적인 주식 매매라기보다는 주식담보대출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이는 금융당국이 아닌 회계법인 내부에서 시작된 움직임으로 관측되지만 실무에선 이미 부채 처리로 방향이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PRS가 대출로 분류되면 기업의 자산건전성은 직격탄을 맞는다. 회계상 부채가 늘어나 재무제표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선택했던 PRS가 도리어 기업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당장 자금이 급한 기업들의 단기적인 자금조달 통로가 막힐 가능성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SK온의 경우 규제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며 "TRS와 PRS가 모두 여의치 않아진다면 단기 차입이 필요한 기업들의 선택지가 사실상 증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PRS도 그동안 파킹딜이 아니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온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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