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게 깔린 목소리, 흔들림 없는 시선이었다. 신삼수 EBS 수신료정상화추진단장의 의연한 말투에 무게가 실렸다. 수신료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단단해졌으나, 그 안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EBS의 현주소와 같았다.
30년 넘게 EBS에서 일한 신 단장과 지난 16일 일산 EBS 사옥에서 만났다. EBS는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영방송이다. 상업 광고를 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EBS는 공적재원이 부족해 상업적 매출로 재원을 채워야 했다.
"EBS 수신료는 위탁 수수료를 제외하면 2.8%예요. 70원이죠. 이렇게 모인 금액은 연간 192억 정도 돼요. 이는 전체 재원에 6.9%예요. 공적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광고, 출판 등 상업적 재원으로 채워야 해요."

신 단장은 이를 '비정상 재원구조'라고 지적했다. EBS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해외 주요 공영방송의 재원구조 중 수신료의 비중은 영국 BBC 65.3%, 일본 NHK 97%로 나타났다. 독일 ARD와 ZDF는 각각 85%와 84.6%에 달했다. 반면 EBS는 수신료 6.9% 포함해 약 30%가 공적재원이다. 수신료를 제외한 나머지 약 23%는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금), 보조금 등이다.
"사실 우리 추진단의 이름처럼 지금의 수신료 배분 비율 구조는 '비정상'입니다. 이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죠."
신 단장은 방발금, 보조금 등의 공적재원에도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 재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독립성입니다. 독립성이 있어야 PD가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교육·국고 보조금은 사용 용도가 명확해요. 예를 들어 교육보조금은 교육, 수능, 강의 사업 등에만 사용해야 하는 거죠.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계획할 수 없기에 독립성에 어긋납니다. 학자들은 가장 이상적인 재원을 수신료라고 말해요.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수신료가 가장 이상적인 재원으로 꼽히는 만큼 '70원'의 수신료는 EBS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있다.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는 교육계의 관심을 받아 여러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스페이스 공감'은 인디·언더그라운드 음악 등을 조명한다.
이밖에 EBS는 '딩동댕 유치원' 등의 유아·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 단장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EBS가 운영한 '온라인 클래스'가 공영방송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가 팬데믹 당시 EBS가 진행한 사업을 보도했죠. 독일에서도 국가적인 재난 상황인데 미디어를 활용해 중단없는 교육을 보여준다고 좋은 사례로 보도했고요. 재밌는 건 그들도 이걸 따라 했어요. BBC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 때 중단 없는 교육을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로 뽑았죠."
신 단장은 시장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분명해도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1996년 제작된 한강 작가가 등장한 '문학기행-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당시 '한강의 여수의 사랑'은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이었는데도 제작됐어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빛을 내고 있잖아요. 저는 공영방송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업방송에서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시도. EBS에 수신료를 더 준다면 지금보다 더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 단장은 수신료 배분 비율을 높이기에 앞서 공영방송의 지속을 위해 수신료 금액이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EBS 자료에 따르면 2007년, 2011년, 2014년, 2022년 총 네 차례 수신료 금액 향상에 대해 논의돼 왔으나, 1981년 이후 44년간 수신료는 동결된 상태다.
"사실 2500원인 현재 수신료에서 EBS 지분 비율을 높여달라는 건 '아귀다툼'에 불과해요. 우리는 이 구조 속에서 자체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찾아볼 테니. 정치권에서는 수신료 위원회 제도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40년 넘도록 고정된 수신료 금액을 이제는 수신료 위원회라는 기구에서 수신료 적정 수준과 배분 구조를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신 단장에 따르면 EBS의 공식 입장은 수신료 금액이 정해졌을 때 수신료 배분 구조를 15%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신 단장은 수신료 금액과 배분 구조를 논하기에 앞서 EBS가 보여준 공익적 가치와 성과를 짚었다.
"EBS는 그동안 공익적 가치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통한 공교육 지원이 학생에게 중요하듯, 수신료 비율 향상은 EBS가 더 열심히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지원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 단장은 공영방송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연신 토로했다. 상업방송이 방송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속에서도 공영방송의 자리는 작게라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신료 금액 향상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다고 역설했다.
"수신료 금액을 올리는 게 1순위는 맞아요. 수신료 배분 구조를 바꾸는 건 다음 문제고요. 그런데 저는 이것들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영방송의 가치. 공영방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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