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음악의 역사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획을 그은 보사노바의 거장 조앙 질베르토(1931.6.10. - 2019.7.6.)가 세상에 남겨 놓은 음악은 변함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방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곳곳에 흐르고 있을 게 분명하지만, 조앙 질베르토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나서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작년에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조앙의 신보(!)가 발매되었는데, 오늘 소개하는 노래는 그 앨범 [Relicário: João Gilberto (ao Vivo no Sesc 1998)] 중의 한 곡이다. 1958년의 싱글 'Chega de Saudade'의 발매를 출발점으로 하는 보사노바의 역사 40년을 기념하는 1998년 조앙의 투어 중 상파울로의 'Secs Vila Mariana'에서의 4월 5일 공연을, 시작부터 끝까지 편집 없이 있는 그대로 담은 앨범이 공연 25주년을 기해 발매된 것이다.
66세의 조앙이 노래하는 36곡. 앨범의 형태로 기록이 남아 있는 조앙의 퍼포먼스 중에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공연의 내용, 녹음의 품질, 오로지 그의 음악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600여명의 관객들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완벽에 가까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이니, 여전히 조앙을 추모하고 있을 그의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레퍼토리는 대부분 조앙이 즐겨 부르던 4, 50년대의 삼바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도리발 카이미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미 발매된 그의 라이브 앨범이나 인터넷 상의 라이브 클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넘버들이지만, 이 곡 'Violão Amigo' 그리고 'Rei sem Coroa'의 두 곡이, 공식적으로 발매된 앨범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50년대 말,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음악을 세상에 선보인 장본인은 바로 조앙과 조빔, 두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보사노바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조빔이 보사노바를 토대로 '조빔 뮤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면, 조앙의 음악은 그가 처음 기타를 손에 들고 나타났던 그 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며, 그런 그의 보사노바를 끊임없이 연주한 나날들이 조앙 질베르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반복되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주와 재창조의 과정이었다.
조앙의 보사노바는 곧 삼바다.(조앙 본인도 그의 음악을 '삼바' 혹은 '브라질 음악'으로 지칭했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가 직접 연주하는 기타라는 단순명료한 조합으로만이 재현 가능한, 그러니까 조앙 질베르토라는 유일무이한 천재가 재창조한, 또 다른 모습의 삼바다. 다양한 타악기의 합주를 통해 비로소 그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삼바의 리듬은, 일견 단순한 패턴처럼 보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리듬패턴으로 연주를 하지만, 사실은 조앙의 열 손가락 하나하나가 서로 미묘하게 어긋나며 만들어 내는 복잡한 리듬 위를, 역시 계측할 수 없는 시간의 단위로 앞서가거나 쫓아가는 형태로 어긋나면서, 마치 외줄을 타듯 리듬에 매달려 흘러가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조앙 질베르토가 '보사노바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앙 질베르토라는 유일무이한 천재가 처음 들려주었을 때 비로소, 이전에는 상상한 적도 없는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으며, 그 새로운 세계가 바로 조앙 질베르토의 삼바, 곧 보사노바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이렇게 한정된 말로 표현하려는 것은 결국 부질없는 짓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크게 마음과 귀를 열고 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조앙 질베르토의 음악을 듣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녹음한 많은 앨범들 중에 단 한 장을 골라 보려는 것도 부질없는 노력이 되겠지만, 다른 어떤 요소도 덧붙이지 않고 오로지 조앙의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조앙 음악의 정수, 그의 라이브 앨범들 중에서도 이 앨범은, 조앙 스스로 '이런 청중을 기다려 왔다'는 감상을 피력한 바 있는 2003년 도쿄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기록한 역사적인 앨범 [In Tokyo]에 비견될 만한 마법과 같은 시간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조앙의 음악을 알게 된 후로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지낸 계절은 없지만, 언젠가부터, 맑은 날보다는 비오는 날이 더 많은 장마철이면 늘 그의 음악을 떠올린다. 음악 듣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에게든 계절, 날씨의 기억과 자연스레 이어져 있는 음악이 있을 텐데, 내게, 비오는 여름의 음악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보사노바다. 활짝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빗소리와 함께 나른하게 조근 조근 속삭이는 노랫소리 그리고 기타 소리.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싸늘한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그림이다. 그리고 그것이 조앙 질베르토가 만들어내는 소리라면.
구름 위라도 걷는 기분으로 난생 처음 그의 모습을 보러 가던 2003년 9월 11일의 저녁, 그날의 도쿄는 무덥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쿄에서의 조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완벽한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1998년 4월 5일의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은, 우연히도 2024년 4월 5일, 나는 또 한 번 그의 목소리와 기타의 마법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던 20년 전 늦여름의 그날로 돌아가, 한껏 긴장하고 숨을 죽인 채 객석에 앉아 있다.
(앨범의 아트웍은, 조앙이 세상을 떠난 직후 비주얼 아티스트 스페토Speto가 그를 추모하는 뜻으로 제작했던 페인팅 작품으로, 막 연주를 마치고 기타를 뮤트하는 조앙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박창학(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 슬로 모션 보사노바/ Celso Fonseca - 'Slow Motion Bossa Nova'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 ⑦]
-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 'fullmoon'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 ⑥]
- 마른 잎들/ Guilherme de Brito - 'Folhas Secas'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 ⑤]
- 남쪽으로 난 돌아간다/ Astor Piazzolla - 'Vuelvo al Sur'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 ④]
- 시인의 눈물 Nelson Cavaquinho - 'Pranto de Poeta'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③]
- 태양이 떠오를 거야 Cartola - 'O Sol Nascerá (A Sorrir)'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②]
- 연재를 시작하며 [박창학의 월드뮤직 가이드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