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ônio Carlos Jobim의 유명한 노래 [Águas de Março]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3월의 비'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크리스마스에 절대 눈이 내리지 않는 곳, 새해의 시작을 한여름에 맞이하는 곳, 북쪽엔 적도의 열대가 있고 남쪽 끝엔 얼어붙은 남극대륙이 있는 곳. 그런 지구의 남쪽 절반 어딘가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분은 나와 어떻게 다를까 자주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 사람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들을 듣고 흥얼거리며, 그들과는 반대편의 지구 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 년 열두 달과 뗄 수 없이 이어져 있는 계절 감각, 남과 북이라는 말과 마치 한 세트처럼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이미지, 개념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회전한다' 류의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 왔던 이 개념들이, 실은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반대의 의미라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것도 그들의 음악 때문이었다.

탕고의 가사에 빈번히 등장하는 '남쪽(sur)'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이미지도, 그러니까 우리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남쪽 나라'의 '남쪽'과는 다른 것이다. 또 대부분 군사정권의 독재시대를 겪었던 남미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남쪽'은 두고 온 고향을 상징하기도 했다. 독재의 탄압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망명처는 주로 유럽을 비롯한 북반구였기 때문이다.

후에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 등 많은 가수들이 다시 녹음한 피아솔라의 대표곡 [Vuelvo al sur(남쪽으로 난 돌아간다)]의 원곡이 실려 있는 앨범은, 그 자신 7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보내고 1983년 비로소, 민주화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의 영화 [Sur](1988)를 위해 피아솔라가 만든 사운드트랙이다. (솔라나스는 이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피아솔라 역시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떠나온 '남쪽'에 대한 향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미 이로부터 3년 전인 1985년, 솔라나스와 피아솔라는, 파리에 망명한 아르헨티나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탕고, 가르델의 망명El exilio de Gardel (Tangos)]에서도 함께 작업한 바가 있으며, 이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1990년, 피아솔라가 파리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 앨범에서는 탕고 가수 로베르토 고제네체Roberto Goyeneche가 이 곡을 노래했다. 고제네체는 영화에도 직접 등장해, 네스토르 마르코니Nestor Marconi의 반도네온 연주와 함께 탕고의 명곡들을 노래하는데, 그 중 한 곡은 피아솔라의 은사라고 할 수 있는 반도네온의 거장 아니발 트로일로Anibal Troilo가 1948년에 만든 [Sur]라는 곡이다. (오메로 만시Homero Manzi가 가사를 붙인 이 곡에서의 'Sur'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명이라고 한다. 피아솔라는 젊은 시절 트로일로에게 발탁되어 그의 악단에서 반도네온 연주자와 편곡자로 활약했고, 고제네체 역시 트로일로 악단의 가수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 물론 지구 저편 남쪽은 여름이겠지만, 탕고는 왠지 지금 우리의 계절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앨범의 음악들을 들으며, 지구의 남쪽, 땅 끝을 찾아가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읽는 것도, 이 계절과 참 잘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코로나로 지구의 남북반구 전체가 온통 공포에 휩싸였던 그 시절,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 버린 세풀베다를 뒤늦게 추모하며.

박창학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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