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갓집 규수로 태어난 이선애(전 세화학원 이사장)가 넘어야 할 산은 봉건적 유가의 가정 분위기였다. 평생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조부는 그에게 내훈만 가르쳤다고 한다. 신교육을 남자가 아닌 여자가 배우겠다 하면 조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뇌 회전 빠르고 셈법에 능력이 뛰어났던 이선애는 부친의 사업을 도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금전 관리와 신용을 쌓으면서 사업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그의 능력은 훗날 태광그룹이 태어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나라 잘되려면 여성 교육 중요
교육은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
넉넉한 자본금으로 학교 설립
태광그룹 창업주이자 이선애에 남편인 이임용 창업주가 1974년 기술 선진국의 거래선 순방 때 서구의 앞선 기술력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것은 교육이었다. 그래서 이임용은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고 한다.

"왜 남학교가 아닌 여학교를 세웁니까?" "나라가 잘되려면 가정교육이 잘되어야 하고 가정교육이 잘되려면 어머니가 될 여자가 먼저 제대로 배워야 한다."<이임용 회장의 추모록 '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 중에서>
이선애의 생각도 남편과 같았다. 특히 여성 교육에 남다른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교육을 허락하지 않은 엄한 가정교육을 받아야 했던 그도 배움에 열망이 강했기에 여성 교육에 대한 집념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여성 교육 열망은 태광 창업 초기부터 기업경영을 도우면서 여성 근로자의 가난과 교육에 대한 애환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77년 6월 11일. 이임용은 일주학원을 설립하고 그해 12월 30일 세화여자중고등학교 설립인가는 받는다. 설립 자산은 3억 8656만원이었는데 당시 반포 2단지 시영아파트가 579만원에 분양된 것과 비교하면 어마무시한 파격적인 액수였다.
"지금은 안 써도 나중 되면 다 쓰네. 교육은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 아닌가."<이임용 회장의 추모록 '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 중에서>
세화여자중고등학교는 최상의 교육 시설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에어컨과 대중화되지 않았던 양변기 등 시설이 도입됐다. 실 한 올도 아끼던 이임용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이나 장관, 정치가, 학자나 그들의 부인이 세화에서 배출될 테니 최고의 시설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선애는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세화학교를 명문사학으로 육성시킨다.
1988년 이선애는 부산 동래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근로자들을 위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태광산업이 부산지역에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소녀들에게 교육과 일자리를 동시에 마련해 주겠다는 의지로 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에게 무상교육, 기숙사제공, 태광산업 취업 등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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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젊은 부부 이임용과 이선애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이임용은 당시 공무원이었는데 이임용이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이선애는 미곡상과 인견가게를 열어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훗날 이임용이 사업에 뛰어드는 밑천이자 태광의 씨앗이 됐다. |

교육장학사업에서 문화 사업까지
‘이선애‘ 마지막 여정 문화대중화
이호진, 경영핵심가치에 '문화'
1990년 이선애는 이임용과 사재를 털어 일주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재단 설립 이후 31년간 200명이 넘는 해외박사 장학생을 지원하고 국내 학사와 해외 석사까지 더하면 총 1770명이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이선애의 마지막 교육사업의 뜻은 "누구나 문화예술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자신의 호 세화를 따 세화재단을 설립하고 자본금을 930억원까지 늘리며 소외계층 아이들의 문화교육을 지원하고 국내외예술인을 지원했다. 이선애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15년 5월 7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어머니 이선애의 교육·문화 열의를 이어받아 임기동안 경영의 핵심가치를 문화와 예술에 두며 국내 예술문화 확대에 열과 성을 다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 8월 서울시와 함께 조성한 해머링 맨 문화광장이다. 여기에는 쉼터, 카페형 버스정류장, 아트쉘터 등이 설치돼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