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은행에서 전대미문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친정부 인사가 산업은행 수장에 내려왔지만 창립 후 68년 동안 CEO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적은 없었다.

강석훈 신임 회장이 출근을 못한 이유는 노동조합의 반발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 강석훈 회장이 이틀째 출근은 물론 취임식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산업은행 노조가 본점의 부산 이전 정책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부산 이전 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출근저지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강석훈 신임 회장은 올해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특별보좌관을 맡았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 주요 공약 중 하나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수행할 적임자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은 인사가 산업은행의 회장으로 낙점됐다”며 “산업은행은 이번에도 승자의 전리품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역대 정권은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산업은행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매년 전문성과 거리가 먼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산업은행은 68년 동안 내부출신 회장이 단 한 차례도 배출하지 못했다.

직원들의 불만은 내부출신 인사가 배제된 것보다 본점 이전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조합은 그동안 산업은행 본점이 지방으로 이전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 수 백, 수 천번 얘기해 왔다”며 “대부분의 금융전문가 역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과제에 버젓이 포함돼 있다. 결국 내정자가 본점 지방이전 미션을 부여받고 왔음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산업은행이 가장 먼저 처리할 문제는 본점 이전보다 많다. 먼저 각종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해 정상화를 이뤄내야 그나마 막혔던 산업 경제의 숨통을 틔일 수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유럽연합의 반대로 현대중공업과 인수합병이 무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매각 방안을 새롭게 짜야한다.

계열사인 KDB생명 매각도 재추진해야 한다. JC파트너스의 계약이 해지된 이후 KDB생명의 지급여력 비율은 올해 1분기 158.8%로 금융당국 권고치를 간신히 넘긴 상황이다. 자칫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

한편 강석훈 회장은 첫 출근 당시 노조와 대화하겠단 약속을 남겼다. 그러나 이틀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노사 갈등은 더욱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장 출근저지 투쟁이 가장 길었던 곳은 기업은행이다. 지난 2020년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내정된 이후 노조의 반발로 27일만에 첫 출근이 이뤄졌다.

당시엔 낙하산 인사에 반대 명분이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부산 이전 반대라는 명제가 분명한 만큼 강석훈 회장이 은행 문턱을 넘기까지 긴 시간을 보낼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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