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 본점 로비. 사진=뉴스저널리즘
한국씨티은행 본점 로비. 사진=뉴스저널리즘

씨티그룹이 한국 철수를 공식화했다.

씨티그룹은 15일 1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한국을 포함한 13개 국가에서 소비자금융사업 출구전략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씨티그룹은 아시아, 유럽 및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소비자금융사업을 4개의 글로벌 자산관리센터 중심으로 재편하고 한국을 포함한 해당 지역 내 13개 국가의 소비자금융사업에서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발표와 관련하여 한국씨티은행의 유명순 행장은 “씨티그룹은 1967년 국내 지점 영업을 시작으로 2004년 한국씨티은행을 출범 시킨 이래 줄곧 한국 시장에 집중해 왔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기업금융사업을 중심으로 한국 내에서 사업을 재편,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고객들을 충분히 지원하는 것에 우순순위를 두겠다”고 밝혔다.

미국 본사 차원에서 출구전략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전해지지 않았다. 한국씨티은행도 이사회와 함께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고객 및 임직원 모두를 위한 최적의 방안을 검토, 실행할 것을 약속했다.

씨티그룹이 밝힌 사업축소 예정 국가는 한국, 호주, 중국, 대만,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폴란드, 바레인 등이다.

금융당국은 향후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몸집 줄여온 한국씨티은행…높아지는 비용효율성 문제 못 풀어


한국씨티은행의 지점 수는 43개를 운영 중이다. 이중 소매금융 점포는 36개에 달한다. 즉,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하는 7개 점포를 남기고 점포 폐쇄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소매금융 담당 직원은 약 939명으로 점포 운영을 위한 소수 인력을 남겨둔 상황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리테일 사업 축소를 시도해왔다. 133개였던 점포를 101개 점포를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노조의 반대로 43개를 유지했다.

당시 한국씨티은행이 점포 축소에 나선 배경은 비용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게 대외적 입장이었다. 고객의 지점 방문이 적어지면서 비대면채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점포 폐쇄 이후에도 한국씨티은행의 비용효율성은 개선되지 못했다.

2017년 한국씨티은행의 판매관리비는 8084억원에서 구조조정 이후 2018년 7032억원으로 약 1000억원 정도 줄였다. 그러나 다음해 다시 7800억원으로 넘어서며 몸집 줄이기 효과는 순간에 그쳤다.

결국 2019년 한미은행 본사였던 서울 중구 다동 건물까지 매각하는 과정까지 겪었다.

숙제를 풀지 못한 이유는 인사적체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씨티은행의 책임자급 직원은 약 1700여명에 달한다. 전체 직원의 67.3%로 행원보다 배 이상 많다.

2014년 대규모 희망퇴직 이후 직원들의 퇴로를 차단한 게 현재 항아리형 구조를 만든 셈이다. 그 사이 신입직원 채용도 진행하지 않아 기존 인력만으로 운영하긴 힘들었단 지적이다.


소매금융 매각 불씨는 남아있지만…문제는 가격


본사는 철수를 원하고 있지만 한국씨티은행은 소매금융 매각 카드를 진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사업권을 매각하면서 직원들의 고용안정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씨티은행이 내놓을 수 있는 건 사실상 라이센스다. 43개 점포 운영권도 넘길 수 있지만 인수 대상자가 관심 갖는 건 개인고객 대상 예금, 신용대출, 카드업이란 얘기다.

그러나 한국씨티은행도 국내 소매금융업을 영위하면서 성적은 좋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878억원으로 전년대비 32.8% 줄었다.

소매금융 부문 당기순이익은 2018년 721억원, 2019년 365억원, 2020년 148억원으로 매년 50% 이상 줄어들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예수금 시장점유율 2017년 2.11%에서 2019년 1.95%로 줄었다. 대출시장 역시 같은 기간 1.90%에서 1.63%로 시장에서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진출을 노리는 지방은행과 신용카드업을 노리는 저축은행 계열 금융회사가 인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수자가 나올 경우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씨티은행의 9월말 기준 순자산은 6조2953억원으로 가격만 2조원대 중반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소매금융 부문만 매각하더라도 최소 2조원 내외가 될 것이라는게 업계 추정치다.

가격이 해결되도 대주주적격성 심사가 남아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순탄하게 M&A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씨티그룹은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 쓴 약 3조원을 회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배당금, 용역비 형식으로 3조6213억원을 회수해 소매금융에 대한 미련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씨티은행의 주 수입원은 사실상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이 본사에 보내는 외화결제 비용이기 때문에 기업금융만 남겨놔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고 덧붙였다.


외국계금융사 철수 시나리오…점포 축소→디지털 전환→철수


이미 한국씨티은행의 긴박한 움직임은 과거 HSBC가 소매금융을 철수할 때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HSBC도 지난 2012년 한국 내 소매금융영업 철수를 밝히기 전 비대면전용상품인 다이렉트뱅킹을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고객이 지점 방문 없이 예금상품을 가입할 수 있는 영업방식은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고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 유입은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고금리 유인으로 유입된 고객들은 금리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재이탈할 가능성이 높아 목표 잔고나 점유율을 달성한 후에도 적정 금리로 인하하기 곤란하다는 단점을 보였다.

실제 2007년 2월 출시된 HSBC 다이렉트는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해 1년여 만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중단했고 결국 2013년 소매금융부문 철수에 이르렀다.

한국씨티은행 역시 점포 축소 후 비대면채널을 활용한 소매금융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점포 축소 후 철수하는 방식은 씨티그룹이 일본법인을 철수할 때와 비슷하다.

2014년 씨티은행 일본법인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소매금융을 매각했다.

씨티뱅크 일본법인의 순이익은 2008년 260억엔에서 지난해 10억엔으로 대폭 감소했다. 수익성 악화와 함께 일본 금융당국의 행정 제재도 철수하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씨티은행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배당금 규제 등 과도한 제재가 한국 철수를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